사회일반

병상없어 응급환자 태우고 전전…'의료취약지' 소방관은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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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건강불평등’ 코로나 1,000일의 기록]
강원도 경계 넘어 수도권 병원 20여곳 돌아 환자 이송 다반사
도내 환자 1만5천명이 병원가기 위해 30km 이상 거리 이동|

■18곳 중 15곳 '응급의료 취약지' 강원도

강원도내 18개 시·군 중 15곳은 권역응급의료센터까지 1시간 이내로 갈 수 없거나 지역 응급센터까지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없는 '응급의료 취약지'이다.

이처럼 열악한 의료 인프라로 인해 코로나19 시기 현장 구급대원들은 강원도 경계를 넘어 수도권까지 병상을 찾아 전전하는 아찔한 순간을 겪어야 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시기 환자 철원소방서에서 환자 이송을 담당했던 정윤수 소방교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다.

정 소방교는 코로나19 시기 자신의 경험을 "거절의 연속"이었다고 표현한다.

실제 지난해 12월에서 올 4월까지 확진자가 급증했던 시기, 정 소방교는 강원도와 수도권 병원 20여곳을 돌아 환자를 이송하는 고충을 겪어야 했다. 춘천의 두 대학병원은 이미 환자들로 가득 차 입원이 불가능할 정도인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병상이 있는 원주까지 환자를 이송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정 소방교는 "어느 날은 철원에서 출발한 뒤 춘천의 대학병원 두 곳에 모두 환자를 이송하지 못하고 결국 경기도까지 간 적이 있다"며 "경기도에 도착해서도 병원 약 20곳에 전화를 돌렸으나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고, 거듭되는 거절 속에서 8곳의 병원을 또다시 돌아 환자를 겨우 이송했다"고 토로했다.

철원에는 확진 환자를 받을 수 있는 공공의료기관이 1곳도 없고, 지역응급의료기관조차 갈말읍 소재 단 1곳밖에 없다. 강원도 뿐 아니라 서울을 제외한 10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98곳의 응급의료취약지가 있다.

'일상' 된 비극…병원까지 평균 거리 서울의 2배

코로나19 시기 이송 업무를 담당했던 여러 소방관들은 이와 같은 비극이 강원도와 의료취약지에서는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강원도 구급대원이 환자를 싣고 병원까지 향하는 평균 거리는 서울보다 2배 더 길다.

소방청의 '2022년 119 구급서비스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 강원도내 구급 현장에서 병원까지 이송된 환자들의 평균 이동거리는 14.5㎞로, 서울(7.0㎞)의 약 2배였다. 강원도내에는 서울과 비교해 응급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적고, 농·어촌 의료취약지에서는 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강원도 뿐 아니라 경북(16.8㎞), 충남(16.6㎞)등 농·어촌 비중이 큰 지방자치단체는 모두 서울에 비해 평균 2배 이상의 거리를 이동해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의료 인프라 격차'는 곧 주민들의 피해로 이어진다. 강원도내에서는 2021년 7만3,471명 중 20.3%에 해당하는 1만4,920명이 30km 이상의 거리를 이동해 병원으로 이송된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서울 (2.5%)의 약 10배 수준이다.

소방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강원도내 이송 환자 7만4,311명 중 1시간을 초과해 병원으로 이송한 사례는 2.14%에 해당하는 1,587명에 불과했지만 코로나19 유행이 확산된 2021년에는 비율이 4.57%로 약 2배 증가했다. 강원도내에서 이송된 7만3,471명 중 3,357명이 1시간 넘게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하고 길거리를 헤멘 셈이다.

횡성소방서의 김선경 소방교는 "지역 내 병원에는 격리실이 따로 없어 무조건 원주로 나갔고, 이송하는 동안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고령 환자들과 어린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는 것이 구급대원 입장에서도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구급차 안에서 다섯 시간동안씩 대기를 한 날은 환자와 구급대원 모두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신고 늦고 예후 나쁜 환자들, 피해 더 커

현장 구급대원들은 통계로 나타나지 않는 주민들의 피해까지 포함하면 강원도내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의료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병원까지 거리가 먼 농·어촌지역에서 주민들의 평소 건강 수준이 열악할 뿐 아니라, 질병이 악화되고 나서야 119에 신고를 하는 등 다양한 구조적 불평등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만석 강원도소방본부 소방위는 "병원까지 가기가 어렵다 보니 이미 상태가 나빠지고 나서야 치료를 시작하게 되거나, 치료를 해도 예후가 좋지 않은 일도 자주 일어난다"며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지역 주민들과 공공의료 인프라를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지금 당장 공공의료 시설, 인력 확충 절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일을 해결하기 위해 당장 지역 안에서 당장 주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공공의료 인력과 시설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공의료시설을 촘촘하게 만들되, 실제로 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력을 갖춰 지역 안에서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희숙(강원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 강원도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은 "지역 안에서 중환자를 케어할 수 있는지 여부의 핵심은 의료진 확충 가능성"이라며 "의료취약지 문제는 모든 문제가 얽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인력을 시급하게 보완해야 다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지역에 남아 필수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지방 국립대 공공병원에 더 많은 인력을 배정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세명대 기획탐사 디플로마 과정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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