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의사봉(議事棒)의 무게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정윤호 정치부

‘탕, 탕, 탕’.

우리 사회에서 의사봉(議事棒)은 권위를 상징한다. 의사봉을 3회 내리치는 묵직한 소리는 회의의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주요 국면을 매듭짓는 신호가 된다.

으레 이 작은 나무 망치는 법정의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실제 사법부는 권위주의를 벗기 위해 1966년부터 법봉을 쓰지 않고 주문을 낭독해 판결하고 있다. 이에따라 지금은 국회와 의회, 위원회 등 공공의 의결 자리에서 쓰는 의사봉이 보편적이다.

문득 의사봉의 유래가 궁금해졌다. 헌데 인터넷을 뒤져봐도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흘러가는 설을 옮기자면 광복 이후 하와이교민회가 정부에 기증한 ‘의사봉과 판’이 시초였다는 주장이 있다. 제헌국회에 근무한 직원의 증언이 있었다고 근거까지 전해지지만 최초 여부를 규명하기는 어렵다. 또 외국의 영향을 받아 임시정부 때부터 의사봉이 쓰였다는 설도 있다. 꽤 오랜 역사를 가진 것 만은 분명한 듯 하다.

의사봉을 내리치는 횟수인 ‘3타’의 유래도 여러 갈래다. ‘선포, 확인, 승복’을 의미한다는 해석부터 ‘천(天), 지(地), 인(人)’ 등 고대 역사, 종교 분야에서 근원을 찾는 추측도 있다.

국회도 의사봉과 관련된 자료가 많지 않다. 국회에 전시된 의사봉의 안내문을 살펴보면 1948년 제헌국회가 개원한 때부터 회의 진행의 각 단계마다 명확성을 기하기 위해 관례적으로 사용돼 왔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기원은 다소 분분할 지라도 의사봉이 가진 힘 만은 분명하다. 의사봉을 차지하겠다며 밀치고 넘어뜨리는 국회의 새삼스럽지 않은 난투극은 언제나 의사봉의 힘을 느끼게 한다. 또 가까이는 수 조원의 강원도 예산과 150만 도민의 법규인 조례가 의사봉을 통해 처리되니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도의회에서 ‘의사봉 3타’를 놓고 때아닌 소란이 일었다. 앞서 열린 올해 첫 임시회에서 ‘무투표 의결’ 논란이 나온 것이다.

당시 회의를 진행한 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 조례안 통과에 대한 이의를 물었고 답이 없자 의사봉을 내리쳤다. 그러자 곧장 몇몇 의원들은 항의의 뜻으로 회의장을 빠져 나갔고 한편에선 “찬반 투표를 왜 진행하지 않았느냐”는 항의가 나왔다. 술렁임 속에 40여 분의 긴 정회가 이뤄졌고 조례안을 문제 삼는 비판 논평도 나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례안은 가결됐다. 의회 회의 규칙에 따라 의원의 이의 제기가 없었으니 투표 없이 의결해도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유야무야 이날 회의는 마무리됐다. 다만 조례안의 옳고 그름은 제쳐두고, 대다수 의원이 회의 규칙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이의 제기를 주저한 탓에 논쟁의 기회를 놓친 아쉬움은 분명히 남았다. 그렇게 해당 조례안에 대한 논란은 추후 회기까지 임시 봉합 상태다.

민의(民意)의 전당인 강원도의회에서는 회기가 열릴 때면 수백 번의 의사봉 타봉 소리가 울리며 도정 현안이 좌지우지 된다. 도민의 선택을 받은 자리라면 의사봉의 힘과 무게를 조금 더 깊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