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우리가 만든 전력의 가치를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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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강릉주재 부장

지방에 사시는 부모는 서울 아들 집에 직접 농사지은 쌀과 김치를 정성껏 갖다 주신다.

아들 가족은 시골에서 보내주는 농산물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고향의 부모는 예전처럼 건강하지 않다. 수십년째 농사를 짓다보니 온 몸이 아프고 부서질 것 같다. 고향의 이웃들은 이제 고령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이 많아졌다. 지역은 젊은 사람 구경하기 힘들고 점차 소멸도시로 변해간다.

수년동안 도내 곳곳에서 발전과 송전에 따른 주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든 느낌은 지금의 농촌 현실과 닮아 있었다.

온 국민이 같은 전기료를 내고 살지만 사실은 지역에서 전기를 생산해 서울로 보내느라 곳곳에서 주민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강원연구원 이원학박사 등이 발표한 정책자료를 보면 지난 1월 기준 도내 전력생산량은 3,834GWh, 사용량은 1,746GWh로 전력자립도가 219.6%다. 전국 1위였다.

지난해만 해도 부산, 충남, 인천, 경북에 이어 5위권의 전력자립도를 가졌던 강원의 전력자립도가 급등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만큼 인구에 비해 발전시설은 더 늘어났고, 환경은 더 나빠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서울의 전력자립도는 11.9% 정도다.

정부는 탈석탄 정책이 본격화된 2020년부터 대규모 석탄발전소가 밀집한 서해안에서 석탄화력발전소 6기의 가동을 중단했으나 동해안에는 대규모 발전소가 잇따라 건립되기 시작했다.

발전과 송전에 따른 고통은 온전히 지역 주민의 몫이다.

석탄을 이용해 발전을 하고, 또 수송하는 과정에서 환경문제는 끊임없이 불거진다. 이렇게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까지 송전하는데에도 송전선로 주변의 환경문제로 주민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 10년동안 강원 등 전력 생산지에서 수도권으로 송전하면서 발생하는 송배전 손실량은 연평균 1조6,990억원에 이른다.

총 440기 철탑을 통해 230㎞의 선로를 조성하는 동해안-신가평 HVDC 500kv 건설사업은 당초 2014년 착공, 2021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됐으나 아직 착공도 이뤄지지 않았고 준공 일정도 2026년으로 수정됐다. 송전탑 설치 과정에도 주민 반대가 극심하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며 일어나는 갈등에 비해 전선 지중화율 등 지역에 돌아오는 혜택은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의 전선로 지중화율은 61.3%, 대전은 56.4%, 인천 45% 순이지만 강원도 전선 지중화율은 10%에 불과하다. 이번 강릉 산불에도 산불의 원인이 전선으로 지목되면서 전선 지중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전선지중화 사업은 지자체와 한전이 반반씩 부담하는데, 동해안은 발전과 송전에 따른 고통이 큼에도 불구하고 재정 여건이 열악해 서해안보다 지중화율이 훨씬 낮다.

송전 갈등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은 간단하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기업을 전력 생산지역으로 이전시켜면 송전선로 구축에 따른 갈등을 줄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전기요금이 지역별로 동일하다면 기업이 이전할 이유가 없으나, 전기요금 차등제가 적용된다면 전기를 많이 소모하는 기업은 전기료가 저렴한 지역으로 점차 분산될 것이고 국토의 균형적 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전력 소모가 많은 데이터센터를 동해안으로 이전 설치하고 데이터 산업을 육성하자는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다음달이면 ‘강원특별자치도’라는 새 시대가 열린다. 우리가 생산한 전기를 효율적으로 소비해 강원도를 기업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분권형 에너지 자립 노력이 필요하다. 지방의 노부모가 서울 아들에게 농산물을 공짜로 보내주듯이 서울·경기로 전기를 보내기 위한 지역 주민들의 희생 시스템은 이제 더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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