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들의 부산스러운 울음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호텔 창밖엔 아직 어둠이 고여 있었다. 네팔의 새들은 왜 저렇게 일찍 일어나는 걸까. 멀리 있는 히말라야로 여행을 떠나려는 것일까. 덩달아 들려오는 종소리로 인해 나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여행자의 도시라는 타멜(Thamel)의 아침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두 번째 방문이니 길을 잃고 헤매지는 않을 터였다. 뭐, 길을 잃으면 또 어떤가.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다 보면 언젠가는 숙소가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오래전 비틀스의 멤버들이 머물렀다는 호텔의 정원 포석에는 비틀스라는 영문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 어떤 노래를 불렀으며 어느 곳을 여행했을까. 비틀스의 이매진(Imagine)을 흥얼거리며 나는 타멜의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직 문이 닫혀 있는 주변 상점들의 간판을 눈여겨보며. 이정표가 될 만한 상가 몇 개만 기억 속에 저장해 놓으면 아침 식사 전에 호텔로 돌아오는 건 전혀 문제 될 게 없어 보였다.
타멜은 네팔을 찾아온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머무르는 곳이다. 여행자들은 타멜에 숙소를 정하고 카트만두 일대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적지를 방문한다. 아침에 떠났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온다. 그 여행객들을 반겨주는 곳이 타멜의 미로 같은 골목들이다. 골목골목에는 호텔과 식당, 술집, 옷가게, 등산용품가게, 환전소, 공예품가게, 귀금속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골목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낮에는 잠을 자던 개들이 밤이 되면 먹을 것을 찾아 어슬렁거린다. 상인들이 여행객들의 옷을 잡고 놓아주지 않으며 오토바이들이 곡예를 하듯 경적을 울리며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간다. 바싹 마른 진흙먼지가 안개처럼 피어난다. 마스크를 쓰거나 생수를 계속해서 마셔 텁텁한 입을 헹궈내야만 한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겨울철은 먼지가 유독 심하다. 상인들은 수시로 거리에 물을 뿌리지만 먼지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천천히 골목들을 유람한다. 상점의 진열품들을 기웃거리며. 처음 방문했을 때는 거리 한쪽이 모두 정전이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상인들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촛불을 켜서 상점을 밝혔다. 촛불의 불빛을 걸쳐 입은 자그마한 타라보살의 미소는 한층 더 그윽해졌다. 나는 고개를 약간 숙인 타라보살의 그 미소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이른 아침의 타멜 거리는 어딘가로 바삐 걸음을 옮기는 현지인들만 보일 뿐 여행객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좁고 어두운 골목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도 자취를 감췄다. 개들도 보이지 않았다. 갈림길이 나타나면 잠시 걸음을 멈춘 채 어느 곳으로 갈 것인지 고민하기를 되풀이했다. 따스한 짜이 한 잔을 후후 입김으로 식히며 마시고 싶었다. 아마 시장으로 가야만 문을 연 짜이 가게가 있을 것이다. 타멜 근처에 시장이 있는 것은 알겠는데 어느 방향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물어보기도 좀 겸연쩍었다. 할 수 없이 현지인들의 뒤를 졸졸 따라갔는데 골목을 빠져나가자마자 그곳에 짜이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주름살이 많은 짜이 가게의 할머니는 시장의 터줏대감 같은 풍채를 지녔다. 주문이 없을 땐 담배를 피웠는데 가히 여장군처럼 보였다. 현지인들은 가게 앞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아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의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짜이를 조금씩 불어 마셨다. 반으로 자른 드럼통에선 장작불이 연기를 피우며 타올랐다. 난전에서 야채와 과일을 파는 상인들, 리어카 위에 메리골드 목걸이를 잔뜩 쌓아 놓은 상인, 자그마한 신전 앞에서 간단한 기도를 드리고 가는 사람들, 서서 신문을 읽고 있는 사내, 곡물 가게 앞에서 노란 옥수수를 기웃거리는 비둘기들... 세상의 시장은 변함없이 활기가 넘쳤다. 나는 짜이 한 잔을 모두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주변은 밝아졌고 골목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들의 이마에 어김없이 붉은색 티카가 찍혀 있었다. 타멜의 골목 상점들 셔터가 하나둘씩 올라가는 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오고 있을 때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회전, 좌회전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이십여 분을 걸었는데 도무지 호텔을 찾을 수 없었다. 동서남북이 어디인지 가늠되지 않았다. 상점들이 문을 열면서 풍경이 달라진 것도 한 요인인 듯싶었다. 하지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타멜의 골목들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처럼 길을 걸었다. 새벽의 새소리에 잠이 깬 비틀스의 존 레논, 폴 매카트니도 짜이를 마시러 나왔다가 길을 잃었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이매진을 흥얼거리며 골목으로 들어가 새로운 골목으로 나왔다. 그러는 동안 코끼리 머리를 한 배불뚝이 신을 만났고 얼굴에 붉은 칠이 범벅인 신을 지나쳤고 이층 창문을 통해 거리를 내다보는 노인도 보았다. 그뿐인가. 팔이 여러 개인 악마를 죽이는 무시무시한 표정의 신을 유리창 너머에서 구경했고 석실 속에서 정좌한 채 명상에 잠긴 부처님도 훔쳐보았다. 그 골목길 끝은 전날 방문했던 카트만두 궁정광장이었다. 나는 골목을 돌고 돌아 호텔의 정반대편으로 걸어온 것이었는데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휘파람으로 부르는 이매진이 흘러나왔다. 이쯤 되면 살짝 자존심을 접고 릭샤(Rickshaw)를 불러 호텔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다. 가서 일행들에게 새벽의 새소리에 홀려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도 빠트리지 말아야 한다.
타멜의 하루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간을 꼽으라면 나는 당연히 늦은 밤을 선택할 것이다. 낮 동안 원숭이들이 탑과 탑을 건너뛰는 사원, 연기 자욱한 바그마티 강변의 화장터, 부다나트의 하늘에서 펄럭이는 오색 룽따들, 그리고 다채로운 표정과 자세를 보여주는 불상들이 모여 있는 파탄의 박물관을 힘겹게 훑고 나면 어느새 저녁이다. 녹초가 되어 돌아와 객잔에서 저녁과 함께 뚜벅(Tubuag)맥주나 에베레스트맥주를 마시고 골목으로 나가면 어김없이 타멜의 어두컴컴한 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행의 노독과 술에 취해 그 컴컴한 골목을 삼보일배 하듯 천천히 걷다가 어느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리면 더 좁고 어두운 골목들에서 검은 개, 흰 개가 걸어 나온다. 사람의 몸을 지닌 코끼리들, 부리가 두툼한 새의 머리를 얹은 사람들, 길고 긴 뱀의 몸을 지닌 여자가 그 뒤를 스르르 따라 나온다. 반인반수들에 홀려 뒤를 쫓다 보면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 방편 없이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타멜에 가면 나는 기꺼이 길을 잃고 매번 새로운 것들을 만나 놀다가 다시 길을 찾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