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한국과 중국

 1988년 7월7일 노태우 대통령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에서 남북한 관계 및 사회주의권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표현했다. 한중수교는 그 연장선에서 이뤄졌다. 한중수교의 국제적 배경은 1989년 12월 미소 몰타정상회의에서 냉전 종식을 선언했고, 1989년 5월 고르바초프의 중국 방문으로 중소관계가 정상화됐으며, 1990년 9월 한소수교가 수립된 것 등이 한중수교의 디딤돌이 됐다. ▼1992년 8월24일 한국과 중국은 정식 수교를 하며 선린우호 협력관계를 합의했다. 당시 한국은 북방외교를 통해 외교적 지평을 확대, 세계 무대에 진출하고자 했고, 중국도 천안문 사건 이후 국제 제재를 뚫고 다시 개혁개방을 심화하는 등 이익의 균형을 절묘하게 찾았다. ▼여기에는 새로운 사고로 무장한 양국 정부 지도자의 의기투합이 있었다. 이후 양국 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외교형식을 격상할 정도로 모범적 양자관계를 구축했다. 물론 마늘 파동, 동북공정, 천안함·연평도 사건, 사드 배치 등과 같은 갈등이 있었지만 여전히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이다. 그리고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이전에는 1,000만명에 달하는 폭발적인 인적 교류가 이뤄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향해 “부적절한 처신에 국민들이 불쾌해한다”고 비판했다. 지난 8일 싱 대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만찬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며 ‘미국 편향’ 외교 정책을 비난했다. 외교부 장차관, 국가안보실장, 국무총리에 이어 대통령까지 나섰다. 한중관계가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역사가 증명하듯 한중수교는 수많은 사람의 지혜와 용기가 축적된 결과다. 서로가 어려울 때 “눈 속에서 땔감을 보내주었던” 소중한 기억이 있고, 개인들 사이의 아름다운 경험의 교류는 혐오와 반목을 극복하는 버팀목으로 자랐다. 그 버팀목을 일시적 감정이나 기분으로 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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