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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묻지마 범죄’

공사로 꽉 막힌 한여름 출근길. 에어컨마저 망가져 푹푹 찌는 자동차에서 헐떡거리던 중년 남자가 차를 버리고 내린다. 길을 걷던 남자는 노숙인과 거리의 여자, 스포츠점 주인, 골프 치는 노인 등을 닥치는 대로 살해한다. 이 남자가 이처럼 무차별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은 절망과 세상에 대한 증오심. 중년의 위기의식과 불안으로 부인과 딸을 폭행해 이혼당한 데다 회사에서 해고당한 데서 비롯된 분노를 마구잡이 살인으로 표출한 것이다. ▼1993년 개봉한 조엘 슈마허 감독의 영화 ‘폴링 다운(Falling Down)’의 이야기다. 도시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그는 체포되기 직전 말한다. “난 나쁜 놈인가. 난 하라는 대로 다 했어.나라를 위하고 열심히 일했지. 그런데 하루아침에 내쫓겼어. 학력은 높은데 기술이 없고 구식이라더군.” 그를 쫓던 늙은 경찰은 말한다. “그렇다고 범죄가 정당화될 순 없어.” 범인은 결국 바다로 추락한다. ▼서울 신림역 일대 ‘묻지마 살인’ 사건의 피해자들은 피의자 조선(33)과 모르는 사이다. 대낮에 사람이 많은 곳에서 거리를 걷던 4명이 영문도 모른 채 무차별적 공격을 받고 1명이 숨졌다. ‘묻지마 범죄’의 전형이다. 조선은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경찰에서 범행 동기를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 달 전부터 범행을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고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불행의 원인을 무조건 사회 탓으로 돌리는 그의 말이 황당하고 소름이 끼치는 이유다. ▼화풀이 범죄는 물질 만능주의와 인명경시 풍조로 인한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사회병리 현상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약물중독과 정신질환까지 늘면서 ‘묻지마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증오성 범죄의 가장 큰 특징은 어디서나 불특정 다수를 향해 마구 자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고 한낮에 거리를 다닐 수 있는 권리마저 ‘묻지마 범죄’에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신림동 ‘묻지마 살인’ 사건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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