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4천600억 투입된 행정망 '무용지물'…내년 정보관리원 예산은 790억여원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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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17% 증액 요구…권인숙 "투입된 예산 점검하고 재발방지책 마련"
전문가들 "민간에 일부 기능 위탁하고, 데이터 관리 시스템 벤치마킹해야"

◇17일 오후 대구 수성구청 무인발급창구가 국가정보자원 네트워크 장비 오류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속보=정부 행정전산망 '시도 새올행정시스템' 마비 사태가 사흘째에 접어든 가운데 정부가 월요일인 20일 시스템 정상화를 목표로 복구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정부 행정전산망의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 등이 있는 대전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정보관리원)에는 이날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 100여명이 투입돼 복구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간 복구 인력은 전산망 장애를 일으킨 네트워크 장비 등을 교체했고, 여러 차례 시스템 점검과 테스트를 진행해 긍정적인 결과를 확인했다.

이에 따라 실제 민원 현장에서 문제가 재발하지는 않는지 등을 확인하고자 18일 시군구·읍면동 주민센터에서 현장 점검을 벌였다. 점검 결과는 양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지자체 현장점검이 주민센터가 문을 닫은 토요일에 이뤄져 평일 대비 사용자 접속량이 현저히 적은 점을 고려해 시스템 정상화를 준비하고 있다.

전날 임시로 재개한 정부 온라인 민원서비스인 정부24도 현재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원활하게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이와 별도로 현장에 투입된 정보통신(IT) 전문가들은 교체한 네트워크 장비 등을 분석해 정확한 장애 원인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프로그램 업데이트에 사용된 패치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업데이트한 프로그램이 다른 프로그램과 충돌한 것은 아닌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종합민원실 내 통합민원발급기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있다.

아울러 해킹으로 인해 전산망 장애가 생긴 것은 아닌지도 검토하고 있다. 현재까지 해킹 정황이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한편, 무려 4천600억 원이 투입된 예산에도 정부 행정전산망이 '무용지물' 되자 전문가들은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민간 전문기업과 적적인 협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원 현장에서 기본이 되는 공무원 행정전산망 관리를 소홀히 해 초유의 민원 서비스 마비 사태를 불러왔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정보관리원이 내년도 예산 규모를 올해보다 크게 늘려잡은 것으로 파악돼 정부 기관이 내실은커녕 몸집 불리기에만 치중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행안부에서 제출받은 '2024 예산안 사업설명자료'에 따르면 내년 정보관리원에 책정된 예산은 올해보다 약 17.2%(790억여원) 늘어난 5천433억여원이다.

정보관리원은 국가기관 주요 서비스의 서버와 통신·보안장비 등 정보자원을 관리하는 데이터센터다. 이번에 먹통 사태를 빚은 행정전산망 '새올'과 '정부24'의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도 이곳에 있다.

인건비와 운영비를 비롯해 전산장비·노후장비 통합구축, 국가융합망구축 등 총 7개 항목에서 대부분 예산이 전년보다 크게 불어났다.

범정부 신규도입 전산장비 통합구축 예산은 올해 576억여원에서 내년 746억여원으로, 중앙행정기관 등 노후장비 통합구축 예산은 1천122억여원에서 1천536억여원으로 증가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종합민원실 입구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있다

내년 건립을 앞둔 공주센터 신축 예산으로 251억여원이 신규 편성됐다. 여기에 2021년 문을 연 대구센터의 내년 예산도 160억원으로 잡혔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대구센터에 쏟아부은 예산은 2천700억원이 넘는다.

행안부는 사업 설명자료에서 "52개 중앙행정기관 정보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며 "급증하는 사이버 위협에 대한 대응 기반을 확보하고 신속한 대처를 위해 노후 보안장비를 교체해 보안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기관과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공동 이용하는 국가기반시설인 국가정보통신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기관이 관리해온 정부 행정전산망이 '셧다운'되고 복구 작업마저 더디게 진행되며 위기대응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라 대규모 예산 증액요구가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권인숙 의원은 "행정전산망을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 쏟아붓는 혈세는 매년 증가했지만, 시스템 관리의 내실은 부족했던 탓에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며 "이제라도 기관에 투입되는 예산이 제대로 쓰이는지 점검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가 덩치 키우기에만 치중해 온 결과라며 이제라도 보안 시스템 강화를 위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종합민원실 입구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태로 외형적인 성장 이면에 숨겨진 위기관리 시스템의 허술함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전국 각지에 데이터 관리 센터를 세우고 인력을 늘리는 등 덩치만 키워서 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기술은 늘 빠르게 발전하고, 정부는 한발짝 느리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이제라도 민간 정보통신(IT) 기업에 일부 기능을 위탁하고, 이들의 데이터 관리 시스템도 벤치 마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드러난 서버 관리 허점을 '보약'으로 삼아 더 탄탄한 대응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장애가 발생하면 동일한 기능을 가진 대체 서버가 즉시 가동되는 게 보안 시스템의 기본 중 기본"이라며 "이게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난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제라도 장애 대응체계와 서버 관리 체계 시스템에 허점이 없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남희 덕성여대 데이터사이언스학과 교수도 "빠르고 편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방점을 두고 전산망을 운영하다 보니까 보안 강화에 소홀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임시방편으로 조치하기보다는 긴 호흡을 갖고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가정보시스템 서비스 장애 발생 다음날인 18일 전산망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을 방문해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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