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홋카이도 서쪽의 니세코정은 인구 4,900여명의 작은 도시다. 니세코는 아이누어로 깍아지른 절벽을 의미한다.
인근 안누프리산(1,308m)에는 4개 유명 스키리조트가 있는 겨울 휴양지다. 인구 규모는 작지만 20여년째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탄탄한 관광업 기반을 토대로 30~40대 청년층의 비중도 높다. 지역인구는 2010년 4,823명, 2014년 4,861명, 현재(2023년 10월 기준)는 4,970명이다. 한국보다 먼저 진행된 고령화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조금씩이지만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니세코는 2017년 일본 정부로부터 ‘와인 구조개혁특구’로 지정돼 일본 최고의 와인 생산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구조개혁 특구는 2003년 일본의 지방규제완화를 위해 도입된 정책이다. 니세코는 와인 생산을 위해 농업인의 지역 특산 주류 제조를 허용하는 혜택을 부여받았다. 또 전국 최초의 마을만들기 조례를 통해 주민이 직접 만드는 마을을 표방하고 있다. 규제 완화와 주민 참여를 통해 지역소멸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 니세코의 사례가 강원특별자치도에 시사하는 점을 점검해본다.

■15년을 준비한 와인특구=니세코는 2008년부터 와인특구 지정을 준비해왔다. 니세코는 스키리조트에서 장기간 머무는 외국인 방문객이 많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연간 외국인 숙박 관광이 22만박에 달할 정도다. 더욱이 축산업이 발달한 홋카이도의 특성상 고품질의 육류와 유제품 등 신선한 먹거리까지 갖춰 볼거리, 먹거리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와인 등 지역의 고급주류 수요와 탄생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
마침 유럽에서 와인 양조 기술을 배워 와이너리 창업을 준비하던 도쿄 출신의 혼다 야스노리씨가 정착했다. 혼다는 니세코만의 와인 생산 경쟁력을 알아봤고 이를 니세코정사무소에 적극 어필했다. 혼다는 이후 수년간 양조용 포도를 꾸준히 생산하며 정부 심사에서 기술력과 경제성을 인정받았다. 정사무소 역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결국 정부는 니세코 전역을 2016년 와인 구조개혁 특구로 지정했다. 주류 생산업자는 연간 6,000병 이상의 생산능력을 갖춰야 하지만 니세코의 농업인은 연간 2,000병 이상의 주류 생산능력를 갖추면 와인 또는 전통주를 생산해 팔 수 있게됐다.

■지역 브랜드 이미지 높인 와인특구=와인특구를 주도한 혼마 야스노리는 연간 3,500여병의 스파클링 와인 ‘니세코’를 생산 중이다. 생산량 자체는 많지 않지만 일본의 각종 와인품평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병당 1만1,000엔(한화 10만원)으로 가격이 높다. 더욱이 니세코의 고급 레스토랑 등에서 다수 소비되면서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니세코 주민들에게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니세코는 환경도시를 표방하고 있는데 니세코 와인 역시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 농법, 천연 탄산 주입 등 친환경적인 생산 방법으로 지역 이미지와도 부합하며 시너지를 냈다.
다만 아직 니세코 와인특구에서 상용화에 성공한 사례는 혼마 야스노리의 와이너리 1곳 뿐이다. 이로인해 산업화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니세코 와인특구의 가치는 ‘미래’에 있다. 혼다씨가 농업인으로서 고품질 와인 상품화에 성공한 이후 일본 전역에서 6개 와이너리가 니세코로 이전했다.
60대부터 2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와이너리 대표들은 현재 혼다씨로부터 생산 기술을 전수받으며 상품화를 준비 중이다. 인구 5000명도 안되는 작은 마을이 전국 최고의 와인 생산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사카이 신지 니세코정 농정계장은 “지역에서 여러 종류의 술을 생산하지만 와인특구 지정 이후 와인 판매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확실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오노 모모에 홍보계장은 ”니세코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환경친화도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혼마씨 와이너리의 유기농법이 마을을 알리고 있으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주민들의 의지와 일치하고 있다 고 밝혔다.

■와인특구를 가능케 한 마을만들기=니세코정은 2000년 일본 지자체 최초로 자치 기본 조례 ‘니세코 마을 만들기 기본 조례’ 를 제정했다.
주민들에게 모든 행정 정보와 사업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행정의 기획, 마을만들기 사업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조례다.
모든 행정과 사업은 주민검토회의를 거쳐야 하며 의회 성격의 마을만들기 위원회도 운영 중이다. 만약 주민 5명 이상이 군수(쵸장)와의 대화를 원할 경우 군수는 의무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주민들이 50%, 니세코정이 50%를 출자한 (주)리조트관광협회는 특산품 판매시설, 커뮤니티 센터 등을 운영, 연 12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오노 모모에 홍보계장은 “주민들이 모든 행정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마을만들기 조례가 제정된 2000년부터 마을이 계속 커졌고 인구가 계속 늘었다”며 “주민 참여를 통해 살지 좋은 마을이라는 입소문이 나 사람들이 계속 유입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지역 언론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 받아 취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