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정칼럼] 제각각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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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건 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판사

UN은 가정의 역할과 책임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세계인이 가정의 의미를 상기토록 하고자 1993년 5월 15일을 세계 가정의 날로 지정하였다. 우리나라도 1994년부터 그날을 가정의 날로 정하였고, 2004년부터는 5월 한 달을 가정의 달로 명명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가족들은 5월 마다 추억을 남기곤 한다.

사실 어떤 직무 분야가 그렇지 않겠냐만 5월은 한창 재판이 진행되는 시기로 법원 구성원들은 망중한의 여유만 느낄 정도일 뿐이다. 더욱이 가정의 달에 접수되는 가사 사건은 담당 판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가사 사건은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전형적인 유형의 사건은 이혼과 부부재산분할, 친권자 및 양육자 지정, 상속재산분할을 들 수 있다.

법원은 가정의 달에도 격화된 아니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된 부부 갈등과 형제자매간 불화를 놓고 재판을 해야 한다. 담당 판사는 법정에서 가족들끼리 상호 맹비난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상대의 허물을 지적하는 내용이 가득한 준비서면과 증거 자료를 본 다음 그 내용을 바탕으로 칼로 정교하게 베어내듯이 신분관계와 재산관계를 자르고 쪼개는 내용으로 판결을 한다. 제 아무리 성정이 목석과 같은 판사라고 해도 이 과정에서 사람으로서 심적 고통을 느끼지 않을 판사는 없다. 특히 친권과 양육권 분쟁 끝에 부모 일방과 자식 간에 사실상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는 내용으로 판결을 할 때에는 부부간의 시시비비를 떠나 앞으로 단장의 슬픔을 느낄 부모 일방에 대하여는 그 사건이 담당 판사의 손을 이미 떠난 뒤에도 담당 판사에게 그 인상과 기억이 한동안 지속된다.

다른 한편으로 가사 사건을 보다보면 사건마다 분쟁의 원인과 전개가 비슷할 것 같으면서도 꼭 그렇지 않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리나는 ‘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하다.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은 5월마다 필자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부정한 관계, 안나의 투신자살이라는 표면적인 소설 줄거리 너머에 ‘제각각의 이유’는 훨씬 더 복잡하고, 깊은 상황을 내포하고 있다. 가사 사건을 보면서 필자가 나름대로 생각한 톨스토이의 ‘제각각의 이유’는 한 가정의 붕괴 원인과 양상은 무수하고, 미묘하며, 내밀하여 가족 외에 제3자는 오롯이 그것을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한다.

가정사의 법적 분쟁을 판단할 법률상의 자격만 있을 뿐 역시 제3자에 불과한 판사도 당사자 가족들 마음 깊숙한 곳에 있을 ‘제각각의 이유’의 본질까지 알아낼 길은 없다. 제각각의 이유를 온전히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오만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부분은 한솥밥을 먹으며 발가락마저 닮고, 서로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으로 시작된 관계인 가족이 처음부터 서로를 소송 상대방으로 삼겠다고 예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파국을 감수하고 소송을 불사한다는 것은 그 ‘제각각의 이유’가 보통의 의지와 동기로 설명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가사 사건을 담당할 판사는 앞서 언급한 무게감과 고민들 가운데에서 맡은 사건을 묵묵히 검토하고, 판단할 것이다. 올해 가정의 달이 7부 능선을 넘어가는 오늘, 화목한 가정에는 그 행복이 앞으로도 오래 지속되기를, 그리고 법적 분쟁으로 인해 현재 불행에 처한 가정에는 분쟁이 끝난 후 고통을 극복하고, 보다 밝은 미래가 찾아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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