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과 장녹수의 만남 ‘광기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동지중추부사 이병정이 이웃과 다툼이 벌어진 장녹수 여종을 타이르는 과정에서 그의 태도에 분노, 형조에 제소한 일을 두고 연산군은 말그대로 대노한다. 그리고 그를 당장 체포할 것을 명한다. 여종에게 ‘공손’하지 못했다는게 이유였다. 동지중추부사는 ‘종2품’에 해당하는 계급으로 임금이 주재하는 조의(朝議·조정의 의논)에 참여할 수 있는 최고위직 관료다. 지금으로 치면 국무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핵심 참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권세와 지위도 장녹수 앞에서는 하릴없이 고개를 숙여야 하는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이병정은 의금부 관원들에 의해 잡혀온다. 두려움에 떨던 이병정은 연산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전모는 이랬다. 이병정은 이웃에서 싸움이 난 것을 보고 타이르고 말리는 과정에서 한 여종으로 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게 된다. 그는 형조에 소를 제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버르장머리 없던 여종이 장녹수의 하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무릎을 꿇고 사죄하게 된다. “곧 숙용 댁의 장무(掌務)인지라, 신이 비로소 두려운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대하여 그 정상을 갖추 설명하고 모르고서 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7월 29일)” 이 일은 설명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급기야 여종과 대질까지 이뤄진다. 여종은 이병정에게 “네 어찌 간사함이 그렇게도 심하느냐?’”라며 호통을 친다. 이병정은 극한의 치욕을 겪는다. 연산군의 이해할 수 없는 분노는 극에 달해 급기야 이병정을 죽이려고까지 한다. 이병정은 장녹수에게 뇌물을 바치고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 하지만 협박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 ‘네가 비록 방면되었지만 내가 다시 한 마디만 하면 죽게 하기가 어찌 어렵겠는가?’ 하니, 병정이 두려워하여, 또 뇌물을 바쳤는데, 전후에 바친 뇌물이 헤아릴 수 없었다.(연산군일기 55권, 연산 10년 8월 2일·사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반복됐다.
기생 옥지화 사건이 대표적. 운평(運平·가무 기생)으로 있던 옥지화가 장녹수의 치마를 밟은 일로 목숨을 잃고 만다. 연산군의 반응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이 일을 두고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뜻의 ‘만상(慢上)’이라는 표현과 함께 불경죄로 낙인찍는다. 연산군 스스로 자신과 장녹수를 동일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옥지화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신하들의 반응 또한 한심하기 그지없다. “위의 분부가 지당합니다. 명하여 참(斬)하소서.(연산군일기 60권, 연산 11년 11월 7일)” 결국 옥지화는 목이 베어지고 효시(梟示·목을 베어 매달아 사람들에게 보임)되기 까지 한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비판세력을 모두 제거한데 이어 언로를 막고 독단의 정치로 민생을 피폐하게 만든 끝에 중종반정으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연산군을 뒷배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장녹수는 참형(斬刑)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분노한 백성들이 그의 시체에 돌을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