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 연휴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고향을 향하던 발걸음,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장, 오래된 집 마당에서 울려 퍼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이르기까지 추석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많이 퇴색된 듯 하다. 그래선지 더 그립고, 더 정겨운 풍경들이다. 이 시기만 되면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추석의 기억이 그리고 추억이 시나브로 피어나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추석은 단순히 풍성한 수확을 기념하고 자축하는 날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오래 전 함께했던 가족, 손수 차려내던 음식, 그리고 따뜻했던 그 시절의 기억이 깃든 특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의 향기와 감정은 여전히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추석 전날이 다가오면 집안은 부쩍 분주해졌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이른 새벽부터 방앗간을 향했고, 부엌에서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며 송편을 빚었다. 그 향긋하고 고소한 내음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송편 속에는 콩이나 달큰한 깨소금만 들어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속에는 추석을 맞이하는 설렘과 가족을 위한 정성이 함께 담겨 있었다. 할머니는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송편을 빚으며 손주들에게 추석의 의미와 전통을 설명했고, 그 이야기는 마치 전설처럼 들렸다. 우리는 송편을 집어 들며 그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곤 했다.
어린 시절, 추석이 되면 집 안은 늘 가족들로 붐볐다. 평소 조용했던 집이었지만, 명절만 되면 마당이 북적이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삼촌, 이모, 그리고 고모들이 모여 추석을 맞이하고,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밤을 꼬박 세우기도 했다. 큰 상에 차려진 명절 음식들은 하나같이 푸짐했고, 가족들이 모여앉아 함께 나누던 그 시간들은 그저 소소한 일상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마당에 울려 퍼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때 그 시절의 정겹고 따스했던 풍경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었다.
추석에는 한복을 입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고 마당을 뛰어다니던 그날의 기억들은 아직도 선명하다. 친척들에게 용돈을 잔뜩 받아든 우리는 동네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이웃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눴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온통 밝고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추석은 그런 날이었다. 모든 이들이 가족과 함께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웃는 그런 날.
귀향길도 마찬가지였다. 추석 전날, 터미널은 또 기차역은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버스와 기차 창문으로 스치는 풍경은 점점 도시의 빌딩에서 시골의 논밭으로 바뀌었고, 그때마다 우리는 고향에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에 콩닥거리는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피곤함은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과의 재회를 생각하면 스르륵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고향에 도착한 순간, 먼 발치에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점점 다가올 때의 그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다.
한 해의 풍성한 수확을 기념하고 조상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 추석. 제사상 위에 차려진 정갈한 음식들을 보며 우리는 어른들이 말하는 ‘예(禮)’의 중요성을 조금씩 배워갔다. 조상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절을 올리고, 그 뒤에 차례로 음식을 나눠 먹는 과정에서 가족의 의미와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됐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심스레 따라 하던 그 예법들이 이제는 가슴속에 남아 내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기억이 됐다.
시간이 흘러, 그때의 고향집은 이제 조용히 먼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추석에 모여 앉아 나누던 이야기, 음식을 나누던 정겨운 순간들은 잊히지 않는다. 한복을 입고 장난을 치던 그 마당도, 밤하늘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순간도 모두 추억 속에서 빛나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문득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은 마음 한구석에 따뜻한 미소로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