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조선왕조실록·의궤 톺아보기]대중매체 속 실록이야기 ①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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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의 한장면.

조선왕조실록의 방대한 기록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 나선 영화제작자나 소설가, 드라마 작가들에게는 그야말로 보물 창고 같은 것이다. 특유의 시적, 은유적 표현, 그리고 기록 너머 행간의 비밀은 창작자에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기 때문이다. 세조의 강원도 순행(巡幸·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보살피며 돌아다님) 등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2019)’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실록에 기록된 세조의 순행 과정에서 나타난 기적같은 순간들이 실은 조카(단종)를 죽이고 왕이 된 세조의 정통성을 되살리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주상의 실록은 우리 공신들의 공과도 기록 할 터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오. 주상이 죽기전에 왕권의 정통성이 기록되어야 우리의 훗날도 기약할 수 있단 말이오” 이처럼 극중 한명회의 대사가 잘 설명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들을 감안하면 세조의 신화만들기 프로젝트가 실제로도 작동했을 개연성이 충분했기 때문에 영화에 이식된 상상에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담무갈 보살의 금강산 현신 내용을 담고 있는 세조실록 38권, 세조 12년 윤3월 28일 내용.

영화에서 광대들이 보여준 첫번째 조작은 실록에는 기록돼 있지 않지만 널리 알려진 정이품송 관련 내용이다. 세조의 가마가 지나는 길목에 있던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올린 사건인데, 광대들의 엄청난 노동력으로 완성된 장면으로 나온다. 그리고 영화에는 원각사 하늘에 황색의 구름이 퍼지고 꽃비가 내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록에 기록된 이 장면에서 작가는 결정적으로 연출이나 조작의 개연성을 찾았을 것이다. “원각사 위에 황운이 둘러쌌고, 천우가 사방에서 꽃피어 이상한 향기가 공중에 가득 찼습니다.…절의 역사(役事)하던 사람과 도성사람, 사녀들이 이 광경을 보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세조실록 33권, 세조 10년 6월 19일)” 비상식적인 상황인데도 목격자가 여럿 있었다는 기록 앞에서 작가는 상상의 가지를 더 키우지 않았을까 싶다. 이어 세조의 금강산 방문 일화에서 영화의 표현은 더 대담해진다. “(금강산) 산기슭에 이르지 못하여 땅이 진동하고…담무갈 보살이 무수히 많은 작은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다시 하늘에 닿을 만큼 큰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세조실록 38권, 세조 12년 윤3월 28일)”

광대들은 화약을 터트려 땅을 흔들리게 하고 담무갈 보살의 형상을 연처럼 날려 이 모습을 재현하는데, 영화의 자막에는 화엄경과 실록의 내용을 뒤섞어 “화엄경 속 담무갈 보살께서 1만2,000 보살이 권속과 함께 나타나시었고 그 길이가 하늘에 닿았다”라고 다소 다르게 적고 있다. 1466년 세조의 ‘강원도 순행’ 마지막 목적지는 오대산 상원사였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저주로 얻게 됐다는 세조의 피부병은 상원사 앞 계곡에서 목욕을 하던 세조가 문수보살을 만나면서 씻은 듯 낫게 된다. 실록에는 기록되지 않은 빈공간이지만 영화제작자는 오대산사기에 있는 내용을 가져와 영화를 완성한다. 역시 광대들의 연극으로 영화에서는 표현되지만 세조의 어의를 걸었다는 ‘관대(冠帶)걸이’가 실재(實在)하고 세조의 피고름이 묻어있는 어의라는 주장이 있는 옷이 복장유물에서 발견되면서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겠다라는 또다른 상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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