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지역 소멸 위기…어떻게 극복하나]400년 된 도심에 300만명 몰리는 이유는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강원일보, 고령화-지역소멸 속도 10년 빠른 일본 기획취재
(3)인구 47만 쿠라시키 미관지구에 年 300만명 몰려
400년 된 도심 주민 스스로 불편 감수하며 보존해 와
주민 노력에 당국 보존 조례 제정, 역사도시 자리매김
섬유산업 특성 살린 청바지 거리 조성 수십만명 찾아

◇일본 도시재생의 성공사례인 오카야마현 쿠라시키 미관지구 일대가 평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박승선기자

일본 오카야마현 쿠라시키는 ‘미관지구’라는 이름으로 더욱 알려진 인구 47만명 안팎의 중소도시다. 이 작은 도시를 찾는 연간 관광객은 300만명에 달한다.

쿠라시키는 400년전 에도시대부터 방직산업과 교역의 중심지로 전국에서 몰려든 많은 사람과 물자가 교류하며 부(富)가 모이는 곳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쿠라시키에는 사람이 몰린다.

번성했던 쿠라시키의 구도심은 현대화 이후에도 에도 시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미관지구 인근에는 고층건물을 건립할 수 없고 전통가옥과 건축물들은 법에 따라 철저하게 보호 받는다. 섬유산업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쿠라시키는 여전히 일본 최대 데님(청바지 원단) 생산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쿠라시키의 외형은 수백년간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일본 도시재생의 성공사례인 오카야마현 쿠라시키 미관지구는 옛 건축물을 그대로 보존하는 동시에 일본=박승선기자

■오카야마의 보석 ‘쿠라시키 미관지구’=지난 9월4일 쿠라시키시 중심에 위치한 ‘미관지구’, 옛 도심 상점가 한 가운데로 잘 정비된 하천이 유유히 흐른다. 하천변에는 수양버드나무 가지가 길게 드리워져 운치를 더하고 사공은 나룻배에 관광객들을 가득 싣고 바쁘게 마을 곳곳을 오갔다. 평일임에도 골목길과 상점가마다 사람들로 붐볐고 차 대신 두 바퀴를 단 인력거가 달렸다.

작은 하천을 중심으로 조성된 마을과 상가는 온통 우윳빛이다. 기와를 얹은 전통 목조 양식의 모든 건물은 높이가 2~3층이다.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같은 색, 같은 높이로 통일된 전통 건물들은 그 자체만으로 큰 볼거리를 선사했다. 서울 종로 익선동, 전주 한옥마을과 유사한 분위기지만 쿠라시키가 옛 모습을 더 간직하고 있었다. 사실 이 마을 자체는 주민들이 스스로 개발을 반대하며 수백년을 지켜온 문화유산이다. 쿠라시키는 일본 에도 시대(1603~1868년) 막부의 직할지로 오카야마현 일대 정치·경제의 중심이었다. 수 백년 전부터 주변의 사람과 물자가 모이며 고급 주택과 창고 등이 들어섰다. 메이지유신과 근대화 이후에는 대형 방직공장이 들어서며 산업적으로도 발전했다. 당시 방직소를 운영하던 오하라 가문은 일본 최초의 사립 미술관을 설립하는 등 지역에 문화를 더했다.

◇일본 도시재생의 성공사례인 오카야마현 쿠라시키 미관지구 일대가 평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박승선기자

■300만명 찾는 400년 도심= 쿠라시키 방직공장을 운영해온 오하라 가문은 전쟁 후에도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있는 도심의 영구 보존을 제안했다.

당시 2대째 방직공장과 오하라 미술관을 운영하던 오하라 소이치로는 중세 성벽 등 유서깊은 도시의 모습을 간직한 독일 로텐부르크를 돌아본 후 쿠라시키 도심의 보존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주민들과 지역의 건축계, 문화인들이 동참했고 주민 자발적인 보존 운동으로 이어졌다.

결국 주민들의 노력에 행정도 움직였다. 쿠라시키시는 1968년 ‘쿠라시키시 전통 미관 보존 조례’를 제정한 이후 제도적으로 도심 중심의 미관지구를 보존·정비 하고 있다. 문화재 보호, 건물 수리 규정이 마련되고 보조금도 지급됐다. 구도심 보존을 통한 관광 활성화는 70여년의 시간이 흐르고 명성이 더해지며 이제 쿠라시키시의 정책적 목표가 됐다. 지난해 쿠라시키 미관지구를 찾은 관광객은 308만9,000명에 달한다. 잘 지켜온 400년 도심이 인구 47만명의 도시를 먹여살리고 있는 셈이다. 쿠라시키시의 시정목표는 ‘역사적・전통적 자원을 활용한 도시 매력 향상’이다.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의 도시의 방향성과 목표 자체를 바꾼 것이다.

쿠라시키시는 도시 정책의 목표를 묻는 강원일보의 질의에 “쿠라시키시가 자랑하는 미관지구를 후세에 남기고, 시의 상징으로 널리 홍보하는 것을 정책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미관 지구를 포함한 쿠라시키시의 중심부를 활성화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주민들이 주도한 보존 운동이기 때문에 현재도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거리 보존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도시재생의 성공사례인 오카야마현 쿠라시키 미관지구 일대가 평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박승선기자

■방직산업 변주문화 ‘데님거리’=쿠라시키는 일본 최초로 근대식 방직공장이 들어선 곳이다. 섬유산업은 지금도 쿠라시키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다.

도시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오하라 가문 역시 방직공장의 오너 일가다. 오하라 가문은 방직업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일본 최초의 사립 미술관과 병원을 설립하고 미관지구 보존을 주도했다.

400여년 전 쿠라시키 인근 세토 내해(일본의 혼슈 서부, 규슈, 시코쿠로 둘러싸인 최대 크기 내해)를 간척해 면화를 심은 것이 시작이었다. 에도시대 무명 끈이 특산품이었고 메이지 시대에는 버선과 다다미 골풀, 1910년대엔 학생복으로 이름을 날렸다. 현대에 들어 데님 생산에 집중하면서 쿠라시키의 특산품은 청바지가 됐다. 지금도 섬유산업은 쿠라시키 제조업의 27%, 근로자의 13% 비중을 차지하는 중추산업이다.

전 세계 유명브랜드에 데님을 제공하며 유명세를 타자 2009년 11월 지역 청바지 업체와 상인, 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이 모여 ‘청바지 거리 추진 협의회’를 설립했다. 온라인 몰 등의 등장으로 빈 점포가 늘기 시작하자 나름의 타개책을 찾은 것이다. 당시 청바지 상점 3곳이 미관지구 인근에 점포를 얻어 청바지 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관지구를 찾은 관광객들이 쿠라시키의 데님 명성을 듣고 청바지 거리도 함께 돌아보며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현재 청바지 거리에 입점한 데님 상점은 46곳, 한해 관광객은 25만명에 달한다.

쿠라시키시는 “전국 굴지의 섬유 산업의 도시이자 특히 청바지와 관련해 ‘일본의 청바지 발상지’로 전국에 알려져 시민들이 큰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지역 언론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강원의 역사展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