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깊어가며 들녘도 다시 분주해지고 있다. 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되면서 농업인의 손길은 바빠지고 있지만, 그만큼 농작업 재해의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농기계 사고, 감염병, 그리고 해마다 심해지는 여름철 폭염까지 우리 농촌은 지금 생명과 직결된 안전의 갈림길에 서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업은 고령농업인의 비율이 높고, 작업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산업 전반에서 재해율이 높은 분야다. 특히 농기계 사고 등 사고가 집중되는 봄철에는 더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더욱이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농촌 재해는 이제 ‘일상화’되고 있다. 2025년 여름은 고온다습한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역대급 폭염이 예고되고 있으며, 실제로 지난 3월에는 이례적인 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해 강원도의 온열질환 발생 건수는 전년 대비 62.5% 증가했고, 특히 하우스 내부는 여름이 되면 체감온도가 40도를 넘나들 정도로 고온 다습하다. 여름 농번기가 다가오지만 급격한 기온 상승은 고령의 농업인들에게 작업 중 온열질환, 심장질환 등 생명 위협이 현실로 다가오는 시기다.
이처럼 복합적인 재해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농업기술원은 기술 기반의 지능형 안전관리체계를 강화하고, 현장 중심의 실천조직을 통해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춘천과 영월에서 추진한 IoT기반 농작업안전 365마을이 대표 사례다. 사고다발지역에는 IoT 교통안전 표지판을 설치해 농기계 접근 정보를 실시간 제공하고, 농기계에는 사고감지 단말기를 부착해 사고 시 위치와 상황을 전송한다. 이 모든 데이터는 모니터링 시스템과 연동돼 긴급 대응에 활용된다. 농업인들이 작업 중 재해 등으로 긴급하게 지원이 필요할 때,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농작업안전 365 시스템 내에서는 작업장 환경개선, 냉각조끼와 농작업화 같은 보호구 보급, 실습 중심의 안전교육 및 농업인 안전재해 보험연계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이는 농업인 스스로 안전을 실천하는, 자율적 실천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다.
여기에 더해, 현장 밀착형 안전 돌봄조직인 ‘농업인안전365 봉사단’이 본격 가동된다. 봉사단은 지난 4월 1일, 전국 최초로 창단됐다. 이 봉사단은 단순 자원봉사조직이 아닌, 전문가와 안전리더 중심의 상시 운영조직이다. 춘천시자원봉사센터에 정식 등록돼, 고위험 농가 모니터링, 안전정보 전파, 예방물품 배부, 캠페인 등을 시군센터와 협력해 체계적으로 수행한다. 특히 고령농과 여성농업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는 맞춤형 활동을 진행한다. 지역 내 자발적 안전문화 확산에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등 사회 전반의 안전의식이 강화되면서, 농업도 이제는 ‘안전’이 선택이 아닌 ‘책임’의 영역이 되었다. 기술과 사람, 제도가 함께 움직일 때 안전한 농촌은 실현 가능하다.
농업은 생명을 키우는 산업이다. 그 출발점은 바로 농업인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데 있다. 안전은 느낌이나 경험이 아닌 과학과 시스템의 문제다. 이제 우리는 수확보다 먼저 사람을 지키는 농업을 선택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이 골든타임이다. 모두가 함께, 작지만 실천 가능한 변화로 건강한 농업, 안전한 농촌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