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털 사이트에서 ‘합의’를 검색하니 최상단에는 로펌 광고가 주르륵 떴다. 뉴스 분야로 내려가니 ‘美中, 관세 대폭완화 합의’, ‘인도-파키스탄 극적 휴전 합의’ 등 굵직한 국제 뉴스가 나왔다. ‘배우 OOO, 결혼 11개월 만에 합의 이혼’, ‘OOO, 악플 더는 못 참아... 선처·합의 없이 법적 조치’ 등 연예 기사도 있었다. ‘동해안~동서울 HVDC(초고압 직류 송전망) 79개 마을 주민 합의’라는 기사도 있었다. ▼홍천군에는 동해안~동서울 HVDC 경과지 79개 마을 중 15개 마을이 있다. 읍내 중앙시장 인근의 한 건물 1층에는 ‘홍천 어울림 쉼터’라는 곳이 있다. 시장을 오가는 주민들이 언제든 와서 음료수를 마시며 쉬었다 가면서 전자파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계약한 민간 갈등관리연구소가 운영을 맡는다. 송전선로, 변전소 등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는 주파수(60㎐)가 매우 낮아 거리가 멀어질수록 급격히 감소한다는 내용 등을 전한다. 수년간 ‘위험 커뮤니케이션’을 거쳐 주민 합의에 도달했다. ▼송전선로 경과지를 선정하기 시작한 2016년만 해도 한전 직원들은 마을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갈등관리연구소를 통해 각 마을별로 주민들과 관계를 형성하는데 4년 이상 걸렸다. ‘보상 협의’라는 무거운 주제를 올려 놓아도 될 정도의 관계부터 만든 것이다. 합의를 끌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보여줬다. ▼홍천군은 송전선로뿐만 아니라 태양광, 석산, 양수발전소 등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갈등이 많다. 사업권과 환경권의 충돌 속에 어느 한쪽도 중요하지 않은 가치는 없다. 홍천뿐일까? 나라 곳곳에 대립과 갈등의 현장은 많다. 합의의 사전적 의미는 ‘의견이 일치하는 것’이다. 6·3 조기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의견이 일치할 때까지 노력하는 바보 같은 인내심, 다수결의 원칙만 앞세우기보다는 합의에 기반한 ‘새 정치’가 다가오는 축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실은 암울해도 희망은 잃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