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의 연기가 멎고 광산의 문이 닫힌 자리는 단지 산업의 쇠퇴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생존이 걸린 절박한 현실로 이어졌다. 강원특별자치도 태백, 삼척, 정선, 영월 등 폐광지역은 지난 수십 년간 석탄 산업을 통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해 왔지만 산업의 퇴조와 함께 일자리와 인구가 줄고 지역경제는 점차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폐광지역 활성화는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단골 공약으로 소비돼 왔을 뿐,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성과를 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2025년 현재는 마지막 석탄 광산인 삼척 도계광업소마저 폐광을 앞두고 있어 사실상 국내 석탄 산업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만큼 지금이야말로 구호가 아닌 진정성 있는 대안과 실행력 있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대선에서 여야 후보들이 앞다퉈 폐광지역 공약을 내놓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광부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워 청정에너지, 의료, 관광 산업을 중심으로 한 미래지향적 폐광 대책을 제시했다. 태백은 국가지원 공공 대체 사업과 주민참여형 풍력발전 등을, 정선은 강원랜드 글로벌 리조트 육성을 통한 관광경제 회복을, 영월은 청정에너지 산업을 통한 신성장 기반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약은 아직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나 재정 확보 방안 없이 제안에 그치고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도계광업소를 찾아 직접 입갱한 경험을 앞세우며 폐광지역 활성화 공약을 제시했다. 중입자 가속기 의료 클러스터, 태백 미래자원 클러스터, 폐광지역 지정면세점 설치 등은 이미 일부 행정절차가 진행 중인 사업으로 비교적 구체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새로운 비전이나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과연 지역 주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도에 따르면 폐광에 의한 지역경제 예상 피해는 삼척 5조6,000억원, 태백 3조3,000억원 등 총 8조9,000억원에 달한다. 실업 인원은 삼척 도계 1,685명, 태백 876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지역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재난 수준의 경제적 충격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정부 주도의 중장기 계획과 과감한 재정 투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공약도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또한 폐광지역의 회생은 산업 대체나 단기 일자리 창출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 구축과 인구 정착 유인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대체 에너지 산업을 유치하더라도 주민이 기술 교육과 일자리 연결을 통해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청년층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교육·문화 인프라 확대도 중요하다. 이와 같은 다층적 접근이 없이는 과거처럼 일회성 사업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간과해선 안 될 일은 정치권의 책임 있는 자세다. 선거 때만 등장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는 ‘공약 남발’의 악순환은 반드시 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