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새 정부의 정책적 지향도 빠른 속도로 정돈되고 있다. 내란 극복과 경기 침체, 통상 압박 속에서도 이재명 정부는 국익과 실용을 기조로 국내외 현안에 신속하고 명쾌한 판단으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추진하게 될 정책의 성과는 불확실하며, 삶의 현장에서 실효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신뢰를 쌓는 것은 어렵지만 허무는 것은 한 번의 실책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반복되는 실패를 수용할 더 이상의 여유도, 인내심도 없다.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분명한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한다.
첫째, ‘선한 의지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누구나 선한 의도를 말하기는 쉽지만, 열매를 얻기는 어렵다. 정책의 무대는 경쟁과 갈등의 현장이다. 저항 세력들은 곳곳에 포진하고 있으며, 현실에서는 치열한 정보전이 전개되고 있다. 정부보다 저항 세력이 유능하면 정부의 실패 가능성은 훨씬 크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는 하나이지만, 정책에 대응하는 세력들은 수도 없이 많다. 정부가 정책을 제시하면 시장은 대책을 마련한다. 정부 혼자 다수의 조직된 집단지능을 상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힘든 일이다. 선한 의지가 정책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면 ‘정부의 실패’는 확정된 것이다. 똑똑한 전략으로 기민하게 현실과 대면하지 못하는 정부의 처방은 백약이 무효일 수 있다. 정부는 현실과의 치열한 긴장, 긴밀한 소통, 고도의 협치를 통해서만 성공이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
둘째, ‘우선순위의 조율’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치는 조율의 예술이다. 인간 사회가 권력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사람과 자원과 일의 서열을 정하고, 이를 잘 조직해서 더 큰 힘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통해 더 큰 국민의 힘을 만들어낼 수 없는 정치는 국민의 부담이 될 뿐이다. 정책의 무대는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치열한 갈등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제한된 자원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 무언가를 선택하며,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책이 갈등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과제들의 우선순위를 선별하고, 정렬하지 못하면 어떤 정책도 순조롭게 추진될 수 없다. 우선순위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면 정부는 저항에 직면한다. 무엇을 중시하고, 누구와 손잡고 일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셋째. ‘사회 정의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선한 의지의 함정을 넘고, 우선순위의 조율을 마쳤다고 해서 정책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민주적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최소 정의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삶을 중시하는 민주적 정부는 정의의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민주적 정부는 국민이 동의하는 정의의 원칙을 준수하면서 성공을 추구하기 때문에 훨씬 큰 인내와 결의로 무장해야 한다.
20세기 진보적 사회 개혁의 철학적 근거를 탐구했던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진보적 사회 개혁의 물러설 수 없는 최소한의 원칙을 논한 바 있다. 롤스가 제시한 사회 정의의 출발점은 그 사회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정책도 그것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의 이익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침해하거나, 이들에 대해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더 큰 불이익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울 수 있다. 잘 조직된 사회 세력들과 이익집단들은 정부가 어떻게 나와도 자신들만의 이익을 지킬 태세가 되어 있다. 반면 조직되지 못한 대다수 국민은 강자들의 경쟁과 힘겨루기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 선한 의지로 시작한 개혁이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으로 종결되는 실패 역사는 수도 없이 많다. 이재명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개혁이 성과를 거두고, 국민의 혜택이라는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강력한 기득권의 저항을 넘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정의의 원칙을 지키면서 선한 의지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우선순위의 조율을 완성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