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도시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두 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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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나누는 ‘벽’과 도시를 잇는 ‘골목’이 하나의 예술 언어로 강릉에 모였다. 강릉아트센터에서 사진으로 시간과 공간을 새롭게 구성해내는 두 개의 전시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1전시실에서는 강릉원주대치과병원장을 지낸 엄흥식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 ‘말하는 벽’이, 3전시실에서는 강릉 지역 사진그룹 ‘사진나무’ 소속 박순희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 ‘시간의 초상, 사진 속에 깃들다’가 오는 20일까지 동시에 열린다.

◇ 엄흥식 ‘삼척’
◇ 엄흥식 수원행궁동
◇ 엄흥식 목포

엄 작가는 전국 골목과 거리의 벽을 기록하며 ‘거리의 언어’에 주목해왔다. 낙서, 벽보, 낡은 그림, 그라피티 등 무심한 흔적 속에서 그는 말 걸 듯 다가오는 예술의 목소리를 듣는다. “작품으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지워지기도 하는 거리 예술은 일상의 저항이자 모두를 위한 예술의 외침”이라며, 엄 작가는 도시의 벽이 단절이 아닌 소통의 창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골목 구석의 벽화나 낙서 등을 여러 조각으로 클로즈업해 이어붙이는 방식은 그가 과거 치과기구나 스테인드글라스를 촬영했던 작업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이번 전시는 그가 생전 스승으로 모셨던 고(故) 이종만 작가에게 바치는 헌정의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엄 작가의 전시는 23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인사아트에서도 이어질 예정이다.

◇박순희 ‘담’
◇박순희 ‘길’

박순희 작가는 이탈리아 소도시의 시간과 기억을 담아냈다. 마테라, 아시시, 피엔차 등 고대와 중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의 문과 담벼락, 좁은 골목을 카메라로 포착한 7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사진은 여행이자 사유의 도구”라고 말하는 박 작가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색과 빛의 흐름 속에서 시간의 결을 읽어낸다. 이탈리아의 도시 풍경과 더불어 강릉의 남문동 성벽, 임당동 성당, 안목의 바닷가에서도 닮은 감성을 느꼈다는 그는 “강릉의 지속가능한 미래 또한 이 오래된 아름다움의 축적에서 비롯돼야 한다”고 전했다.

두 전시 모두 ‘기록’이라는 사진의 본질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단지 보존이 아닌 ‘해석과 감응’의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의 기억과 감정을 사유하는 시각 예술의 힘이, 이번 전시를 통해 강릉에서 더 선명하게 발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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