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 집중화와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전기를 생산하거나 송전하는 지역과 전기를 소비하는 지역의 전기요금을 각각 다르게 책정하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가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세싸움 조짐까지 보이며 도입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은 지난해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명시돼 이미 제도적 기반을 갖췄다. 특히 균형발전,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위한 전력 수요 대응에 반드시 필요한 제도인만큼 도입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는 발전소와 송전탑, 송전선로가 밀집해 전력자립률이 높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소비 지역을 구분해 생산 지역은 상대적으로 요금을 낮추고 소비 지역은 요금을 더 부담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는 제주를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이 동일한 요금체계가 적용된다.
강원특별자치도와 경북, 충남도 등은 원자력, 화력발전소는 물론 송전선로가 밀집해 사회·환경적 부담을 감내하고 있다. 더욱이 전력 생산지역 대부분이 지역소멸 위기에 처해있다는 점에서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은 대표적 균형발전 정책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강원자치도를 비롯한 전력 생산지역과 수도권, 정부는 모두 셈법이 다르다. 강원자치도의 경우 올해 7월 기준 전력 자립률이 160%대로 경북, 충남, 전남 등과 함께 3~4위권이다. 2023년의 경우 213%로 소비량의 두 배 이상을 생산했으나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가 지연되며 올 들어 일부 화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춰 자립률이 떨어졌다. 또 강원도의 송전철탑(765㎸ 기준)은 333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전국 대형 송전철탑(1,075개)의 30%가 강원도에 몰려있다. 이로 인한 주민 피해 등을 고려하면 전기요금을 인하해 기업유치 등의 혜택을 줘야한다는 것이 도의 입장이다.
강원자치도를 비롯한 전력 생산지는 광역지자체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산업용 전기에 대해 요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수도권은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 시 수도권 제조업 전체 전력 비용 부담이 연 1조4,000억원 증가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경우 전국을 일단 수도권, 비수도권으로 나눠 요금을 차별화하고 장기적으로 지역별 요금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강원자치도 등은 전력자립률이 낮은 광역시 등과 차별성이 없어 기업유치 등에서 별다른 이점이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더욱이 정치권도 수도권의 표심을 의식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보니 법 제정 이후에도 내규와 고시, 지침 등이 없어 시행은 하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강원자치도는 인천, 충남, 울산, 전남, 경남·북 등 전력 생산지역과 연대해 차등 전기요금제 즉각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김진태 지사는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추진 토론회에서 서면을 통해 “강원의 청정 산하를 가로지른 거대한 송전탑과 송전선로는 주민들의 설림 터전을 위협하고 갈등을 불러왔다”며 “전기요금 차등제는 왜곡된 시장을 바로잡고 국가 효율성을 높이는 미래지향적 경제 정책”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