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언대]수몰은 안전이 아니라, 기억을 잠그는 정책이다

김태수 한국석탄산업유산유네스코등재추진위 공동대표

태백시 장성동 주민들이 ‘장성광업소 수몰 결사 반대’ 현수막을 내걸고, 영하의 날씨에도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장성광업소는 한국 석탄산업을 대표하는 탄광이고, 장성광업소의 수갱시설은 작동 가능한 유일한 유산이다. 그런데 이런 보물급 유산을 수몰시킨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폐광 갱도 수몰 정책은 ‘안전’과 ‘관리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제시하지만, 이는 과학적·유산학적·미래 전략 차원에서 재검토가 불가피한 선택이다. 특히 도계·태백·정선 등 강원도 탄광지역은 한국 근대 산업화의 핵심 현장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드문 사례로, 지난 해 김진태 강원도지사께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공식 선언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심 유산인 갱도를 수몰하는 것은 스스로 세계유산 추진의 기반을 제거하는 정책적 자기 모순에 가깝다.

우선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수몰=안전’이라는 인식은 국제적 합의가 아니다. 석탄광은 탄층과 퇴적암이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를 갖고 있어, 장기 수몰 시 암반의 화학적 풍화와 수압 변화로 인한 미세 균열 확대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독일 루르 지역이나 영국 웨일스, 일본 하시마(군함도) 등 주요 폐광지역에서는 전면 수몰보다 핵심 갱도를 비수몰 상태로 관리하며 상시 모니터링하는 방식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면 수몰은 국제 기준이라기보다 행정 편의적 선택에 가깝다.

유산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더욱 명확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진정성’과 ‘완전성’을 핵심 요건으로 삼는다. 석탄산업유산에서 갱도는 단순한 부속 시설이 아니라 생산과 노동, 기술이 집약된 공간 그 자체다. 갱도를 수몰하는 순간, 석탄산업유산은 지상 시설만 남은 불완전한 기념물로 축소된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역시 산업유산을 지상과 지하, 유형과 무형이 결합된 전체 시스템으로 정의한다. 갱도 수몰은 이 체계를 물리적으로 단절시키는 행위다.

더 큰 문제는 수몰 정책이 단기적 비용 절감에는 기여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막대한 기회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 상실, 국제 교육·연구·관광 자원으로의 전환 기회 소멸, 지역 재생의 핵심 동력 상실은 단순히 지역의 손실이 아니라 국가적 손실이다.

우리는 지금 국민주권정부에서 살고 있다. 국민주권은 공동체의 의사를 스스로 결정하는 최종 지위와 권위인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적 권리이다. 국민이 주인이고 권력이다. 오늘도 태백지역 주민들이 지역의 산업유산을 지키기 위해 일치단결하여 처절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주권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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