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내 농산어촌을 중심으로 학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학교 울타리를 넘어 권역 단위로 수업을 공유하는 새로운 공교육 모델이 가동되고 있다.
소규모 학교는 교원 수급 한계로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하기 어렵고, 농어촌 지역은 대도시에 비해 사교육 인프라도 부족해 학습 기회의 격차가 구조적으로 발생해왔다. 이에따라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은 학교 간 경계를 허물고 권역별 '거점형 기숙형고교'를 중심으로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방과 후와 주말을 활용해 인근 학교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심화 수업과 진로·진학 프로그램을 개설하면서 개별 학교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교육의 수요를 공동으로 풀어내겠다는 취지다. 학생 수 감소라는 위기를 '축소'가 아닌 '연결'로 대응하면서 공교육의 내실있는 방향 전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숙형 고교, 지역교육 허브로 진화=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은 2024년부터 거점형 기숙형 고교 프로그램을 본격 운영하고 있다. 2025~2026년 2년 간 지정돼 거점 역할을 하는 학교는 18개 시·군에 22개 학교다. △춘천고 △원주 삼육고 △원주 금융회계고 △강릉고 △속초 설악고 △양양고 △동해 북평고 △태백 황지고 △태백 한국항공고 △삼척 도계고 △삼척 한국에너지마이스터고 △홍천고 △횡성고 △영월고 △영월 한국소방마이스터고 △평창고 △정선 사북고 △철원 신철원고 △화천고 △양구 강원외고 △인제 원통고 △고성고 등이다. 지정된 학교에는 연간 1억4,000만원 가량의 예산이 지원된다. 2024년 첫 운영을 시작하면서 도교육청은 ‘지성과 인성을 겸비한 강원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내세워 사교육비 절감을 통한 공교육 신뢰 향상과 맞춤형 교육 실현으로 진로․진학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해당 학교들은 정규 수업 외 방과 후와 주말 시간을 활용해 인근 학교 학생들까지 참여하는 심화 교과 수업과 면접·진학 지도, 찾아가는 면접 아카데미, 학교 특색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 기숙형 고교는 단순한 생활 관리형 학교가 아니라 지역 교육의 허브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지역 여건상 비어있던 공(空)교육을 강원형 공(公)교육이 메우는 효과로 볼 수 있다.
■소인수 학생 맞춤형 수업 확대=철원군의 2024년 기준 고교생 수는 849명으로 2017년(1,335명)보다 36% 감소했다. 신철원고를 비롯해 철원고, 철원여고, 김화고 등 4개 일반고교에서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다양한 수업 개설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학생들은 이같이 선택의 폭이 줄어들면서 진로·진학의 설계 또한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신철원고는 소인수 학생의 교육 고도화를 위해 '금속의 반응성 비교실험(화학)' '광합성 비교실험(생명과학)' 등 맞춤형 수업을 진행했다. 또 '찾아가는 면접 상담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4개 학교의 3학년 부장 교사와 담임 교사들이 본인이 근무하는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로 학생들을 상담하도록 진행했다. 철원 지역 특성상 학교 간의 거리가 멀어 학생들의 이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교사가 직접 학교를 찾아가는 형태로 일과 이후 저녁시간을 활용했다. 또 강원진학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대학 입시에 필요한 면접을 연습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문선희 담당 교사는 “과학 실험 및 실습 프로그램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방과 후 또는 주말을 이용해야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 등의 이유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었다”며 “다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학력증진부터 또래 문화 교류도=인제군의 거점형으로 지정된 원통고는 기숙사내 안정적인 면학 환경을 조성해 학생 스스로 학습을 설계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자생적인 학습 역량 강화에 중점을 뒀다. 또 인제고, 기린고 등 타 학교와의 연대로 학생들의 교류를 확대시켜 사고를 넓히는 과정도 밟았다. 원통고 기숙사는 학생들의 학습 수준과 수요를 반영해 기초 개념 정립부터 고난도 심화 과정까지 단계별 야간 교과 보충 수업을 운영했다. 특히 고교 3학년 기숙사생을 대상으로 실제 수능과 동일한 시간표와 엄격한 감독 하에 주말동안 실전 모의고사를 실시해 감각을 익혔다. 희망학과에 재학중인 대학생 멘토와 기숙사 입사생을 온 오프라인으로 매칭해 전공 심화 정보 공유, 학과 탐색, 학습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등 다각적으로 이뤄졌다. 책도 매개가 됐다. 기숙사내 '전공으로 잇다' 릴레이 독서를 진행, 자신의 전공 희망 분야와 관련된 도서를 선정해 핵심 내용을 요약, 다음 주자에게 전달하고 서평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또 타 중·고교 학생들과 함께 하룻밤 동안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북나잇! 밤새 책 봄' 프로그램도 진행해 독서 문화를 확산시켰다. 김현섭 담당 교사는 “단순히 원거리 거주 학생들에게 숙박 장소를 제공하는 기숙사가 아닌 거점형 기숙형 고교로서 안정적인 행정 시스템과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구축해 타 학교와 공유 가능한 우수한 모델로 만들어나가겠다”고 했다. 또 “일반 학생 위주의 프로그램에 더해 기숙사에 거주하는 운동부 학생들을 위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나갈 것”이라고 했다.
■운동·항공우주과학 ‘특기 살리기’=거점형 기숙형 고교로 지정된 삼척 도계고는 지역 학생들의 항공우주과학 분야 관심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도계고는 장원초·신동초·미로중·임원중·하장중 등 인근 초·중·고 학생들을 모집해 경북 구미 국립금오공과대학교에서 열린 제23회 전국항공우주경진대회에 참가했다. 모형로켓과 물로켓, 전동비행기, 고무동력기, 코딩드론은 물론 AI를 활용한 우주항공 게임 시나리오 등 다양한 종목에 총 48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윤도현 담당교사는 “지역 청소년들이 항공우주과학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며 “지역 과학 교육의 저변을 넓히는 긍정적인 동력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함께 도계고는 서울대 등을 방문해 다양한 학과와 전공을 체험하고 학생들이 관심 분야를 구체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속초 설악고는 학생들의 개별 성향을 모두 존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호응을 얻었다. 기숙사 학생 중 운동부 전원을 대상으로 부상예방을 위한 재활프로그램과 멘탈 트레이닝 기법을 지도했다. 또 운동부 학생의 기초학력 향상을 위해서 주말 자기주도 학습을 운영했고, 여름방학 중에는 체대 입시반도 함께 병행했다. 수능을 대비해 과목별 심화 개념 설명과 문제풀이 집중 수업도 2주간 진행했다. 타 학교 학생들과 함께 확륭과 통계,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등 교과 교사를 초빙해 수능 대비반을 편성했다. 또 속초, 양양 지역 고교 3학년 40명을 대상으로 대학 입시에 필요한 모의면접을 실시했다.
김문희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 진로진학팀장은 “올해 3년차에 접어드는 거점형 기숙형 고교 정책은 단순히 방과 후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사업이 아니라 권역별로 교육 자원을 공유해 농산어촌 학생들의 학습 기회를 넓히는 공교육 혁신 모델”이라며 “앞으로도 지역 여건에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학생들이 거주 지역에 관계없이 충분한 진로·진학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