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동해안 고정 간첩단 사건'', 제대로 규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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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이라는 세월은 한 인간의 생애가 통째로 흘러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 모진 세월 동안 ‘간첩''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숨죽여 살아야 했던 이들이 있다. 최근 춘천지법 강릉지원이 1960년대 ‘동해안지구 고정 간첩단 사건'' 피해자들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이 평범한 어부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그리고 우리 사법 정의가 그 과오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 다시금 통찰하게 한다. 1964년 동해안에서 조업 중 북한에 납치됐다가 돌아온 어부들은 환영 대신 서슬 퍼런 취조실로 끌려갔다. 당시 수사기관은 이들을 간첩으로 몰기 위해 영장 없는 불법 구금과 혹독한 고문을 일삼았다. 견디다 못한 어부들은 살기 위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허위 자백을 해야만 했다. 국가가 보호해야 할 국민을 오히려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이미 이 사건에 대해 국가 기관의 불법 구금과 인권침해가 있었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공권력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야만적인 폭력을 휘둘렀음을 국가 기관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법적 명예 회복을 위한 재심의 문턱은 높았고, 그사이 피해 당사자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의 비극은 당사자들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간첩의 가족''이라는 주홍글씨는 유족들의 삶까지 옥죄었다. 취업과 사회활동에서 차별받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던 유족들의 고통은 육체적 고문 못지않은 정신적 고문이었다. 60년 만에 내려진 이번 재심 결정은 단순히 법적 기록을 정정하는 절차를 넘어, 대를 이어온 유족들의 한(恨)을 풀고 사회적 명예를 복구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올 4월, 시민단체와 법률 지원 단체들이 춘천지법 앞에서 신속한 재심을 촉구하며 진정서를 제출한 것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이들의 눈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요구였다. 사법부가 이에 응답해 재심 개시를 결정한 만큼, 향후 재판 과정은 신속하고도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재심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사법부의 자정 작용이다. 과거 독재 정권 시절, 법원은 수사기관의 고문과 조작을 걸러내지 못한 채 확정판결을 내림으로써 인권 유린의 방조자 역할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재심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과거 사법부가 행했던 과오에 대한 통렬한 반성의 장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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