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때가 되면, 연안에 산란해놓은 도루묵 알이 이미 딱딱해져 질기다. 어금니로 꽉 씹어야만 알들이 터지면서 단물이 나온다. 마땅한 군것질거리나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에는 이 도루묵 알이 훌륭한 간식이었다. 구멍가게 하얀 은쟁반 위에 10원, 20원에 몇 개씩 팔던 알을 씹고는 껍질을 “퉤” 하고 내뱉었다. 그러다 보니 길가에는 온통 하얗게 도루묵 알껍질이 쌓이기도 했다"
강원도 토박이인 엄경선 작가는 2020년 발간한 저서 '동쪽의 밥상'에서 동해안의 겨울을 이렇게 묘사했다.

작가의 기억처럼 동해안 사람들은 저마다 겨울이면 생선에 담긴 추억 하나씩을 떠올린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배고픔과 허전함을 달래주던 도루묵 알부터 추운 동해안의 겨울을 견디게 해 준 곰치국과 도치 알탕, 김장철이면 김치 사이로 숭덩숭덩 썰어 던져넣던 생선까지 동해안의 식탁 곳곳에는 생선에 담긴 그리움의 맛이 진하게 배어 있다.
시간은 지났지만 겨울 생선에 담긴 동해안의 맛은 여전하다. 북풍이 한기를 몰고 달려오는 동해안의 겨울은 춥고, 영하의 날씨에 비록 몸이 절로 움츠러들지만 항구 앞 시장 곳곳에서는 아침마다 어민들이 잡아 온 신선한 겨울 생선이 펄떡이고, 팍팍한 살림살이에도 골목 곳곳에서 생선 굽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이 시기가 되면 고소하고 촉촉한 알이 제 맛인 도루묵과 가자미는 산란기를 맞아 잔뜩 시장에 나오고, 신선도가 생명인 곰치는 겨울 추운 날씨에 국을 끓여 먹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은 동해안 사람들에게는 추억이 되살아나는 시간이고, 동해안을 찾은 미식가들에게는 식도락 여행의 제 철이다.

그 중에서도 삼척의 겨울은 더 특별하다. 태백산맥과 동해안에 땅을 대고 한류와 난류의 물길을 모두 받아내는 삼척의 바다는 겨울이면 생선과 조개, 해조류까지 다채로운 식탁을 만들어내는 일등공신이다. 손 한 뼘 크기에 뼈를 발라 입에 쏙 넣으면 입 안에서 알알이 흩어지고 터지는 알의 맛이 일품인 도루묵, 국물을 후룹 하고 마시면 뜨끈한 곰치 속살이 목으로 술술 넘어가고 얼큰한 김치맛과 생선의 감칠맛이 속을 풀어주는 곰치국, 젓가락으로 살을 바르면 쫀득한 껍데기와 기름이 살살 오른 뽀얀 속살이 어우러져 든든하게 배를 채워주는 가자미까지. 삼척이라면 미식가들의 겨울을 한없이 맛있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래서 1월에는 삼척에 가보기를 추천한다. 해 뜨는 아름다운 동해안은 물론, 이 겨울 추위를 반찬 삼아 최고의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말이다. 윤기 흐르는 밥에 고소하고 따뜻한 생선 한 점이면 2023년도 든든하게 견뎌낼 자신이 생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