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권혁순칼럼]강원도의 기이한 ‘신기록’ 행진

지독한 가난에 찌들어 살았던 강원인들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 너도나도 보따리를 싸 서울로 떠났다. 1970년대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본격화된 저출산 풍조까지 겹치며 1970년 186만6,928명에 달했던 도내 인구는 올 2월 현재 153만 4,067명이다. 한국 산업화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했던 태백 삼척 영월 정선 등 탄광지역은 한때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석탄산업은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강행된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탄광촌가 폐허가 되다시피했다. 생존을 위해 ‘카지노장’까지 유치해야 했을 정도다.

강원경제의 지표는 여전히 암울하다. 전국 총생산 가운데 강원도가 차지하는 비율은 3%도 채 안 된다. 교통망은 더욱 열악하다. 수십년 강원남부권 숙원사업인 영월~삼척 고속도로는 지난 5월7일에서야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에 선정됐다. 앞으로 예타 통과가 남아있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강원도와 관련된 수 많은 공약이 쏟아졌지만 상당부분은 지켜지지 못했다. 타 지역에 비해 정치력에서 늘 밀려왔던 탓이다. 중앙고속도로를 춘천에서 철원까지 연결하겠다던 공약은 1994년부터 나왔지만 아직까지 그대로다. 강원도 물가상승률은 IMF인 1998년과 금융위기를 겪은 2008년 등 경제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여 왔다. 1998년 도내 물가는 1년전 대비 8.8% 상승해 전국 평균 상승률 7.5%를 1.3%포인트 앞섰다. 2008년엔 5.3% 올라 전국 4.7%를 웃돌았다. 2022년 도내 물가는 6.0% 상승하면서 전국 평균 5.1%를 크게 상회한 것은 물론 가장 상승률이 낮았던 서울(4.5% 상승)과 비교하면 1.5%포인트나 높았다. 이는 열악한 교통망으로 물류비용이 타 지역에 비해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019년 10월 초고압 송전탑의 위치 조사 결과, 전국 초고압 송전탑의 32%가 강원도에 집중돼 있다. 횡성이 85개로 가장 많았고 정선, 삼척, 평창 등이 뒤를 이었다. 석탄에 이어 전력의 생산기지가 강원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에 유치한 화력 발전소는 쉴 새 없이 연기를 내 뿜는다. 지역경제를 위해 필요한 시설이지만 환경이 파괴된다. 재정력이 빈약한 강원도의 딜레마다. 접경지역은 대한민국의 국방과 안보를 위해 군사보호시설 등이 설치돼 70년간 희생과 고통만을 강요받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산업연구원과 함께 최근 수도권기업을 대상으로‘지방 이전 및 신증설 의향’을 조사한 결과에서 수도권 기업 10곳 중 3곳이 지방 이전·투자를 고려하고 있지만 강원도를 선택한 기업은 극소수로 전국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기업들 중 ‘5년 내 비수도권 이전 혹은 신·증설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 비율이 28.9%를 차지했다. 그러나 강원도 내 이전 및 투자를 고려하는 기업은 2.7%에 불과했다. 강원도민들의 응급의료시설 평균 접근성(거리)은 22.32㎞로 17개 시·도 중 가장 멀다. 특히 전국 평균 11.89㎞보다 2배 정도 떨어져 있었고 2.94㎞에 불과한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세가 비슷한 전북 14.77㎞보다도 한참 멀리 위치했다. 이는 국토교통부 국토정보지리원이 2021년 8월에 발간한 2020년 국토모니터링 조사 결과다. 넓은 산과 바다 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강산을 가지고 있는 강원도는 그동안 ‘미래의 땅, 약속의 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강원도의 각종 지표는 전국 최하위라는 기이한‘신기록’행진이다. 지금 강원도는 수십년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힘을 기르고 뭉쳐 ‘강원도 체력’을 길러야 한다. 진짜 강한 체력을 만들려면 격렬한 훈련으로 근육을 혹사시켜야 한다. 근육은 때로 찢기고 망가졌다가 회복하면서 성장하는 법이다. 그 출발은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감이다.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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