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21일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자 정부는 공언한 대로 남북 간 무력 충돌을 방지하는 안전판으로 여겨졌던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조항을 효력 정지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순방 중임에도 2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9·19 합의 효력 일부 정지 안건을 비준했다. 남북관계발전법 제23조 3항에 명시된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기간을 정해 남북합의서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북한에 통보하면 그간 합의에 따라 금지됐던 접적지역 정찰 활동과 군사훈련을 재개하는 수순이 유력하다. 남북 간 체결된 합의가 공식 절차를 밟고 명시적으로 효력 정지 혹은 파기된 건 처음이다. 9·19 합의는 2018년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때 채택됐다. 하지만 북한은 그동안 2019년 서해 완충구역 내 창린도에서의 해안포 사격, 2020년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감시초소 총격, 개성공단 연락 사무소 폭파, 2022년 서해와 동해 완충구역 포사격 등 위반 행위를 계속해 왔다.
북한도 2020년 6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 등을 통해 9·19 합의 파기를 위협한 적이 있지만 실제로 효력 정지에 나선 건 남측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맞대응이 우려된다. 특히 북한이 9·19 합의가 없을 때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파기의 후과를 치러 보란 식으로 공세를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선 원상복구를 내세워 시범 철수한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복구, 공동경비구역(JSA) 현장 근무 경비병 재무장화 등이 가능하다. 휴전선 인근 지역까지 무인기를 접근시키는 방식으로 위협할 수도 있다. 열병식에서 선보인 전략무인정찰기 ‘샛별-4형’, 다목적공격형무인기 ‘샛별-9형’이 활용되는 시나리오도 전망할 수 있다. 북한은 3차 발사에 성공했다고 보도하면서 앞으로 수 개의 정찰위성을 추가 발사할 계획도 발표했다. 또한 최근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힌 신형 고체연료 엔진을 사용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의 경우 시기가 문제일 뿐 이미 예고된 상황이다.
우리가 북한 위협에 굴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인 것은 북한의 끝없는 도발이 낳은 당연하고 불가피한 대응이다. 다만 이를 빌미로 북한이 핵·미사일 무력 시위나 국지적 군사 도발 같은 위험한 모험을 감행할 개연성도 커졌다. 정부가 보여준 단호한 결의 못지않은 단단한 태세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남북 간 군사적·우발적 충돌 가능성 등에 대해 군은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압도적 대응’이 필요하다. 더 강력한 국방력을 갖춰야 하며 한미일 동맹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강 대 강’ 대치 국면으로만 갈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 창구를 열어 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국가 안보는 정당과 이념을 초월하는 절대적 가치다. 국론 분열이 없도록 야당과 국민에게도 소상히 사정을 알리고 협력을 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