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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송전탑 갈등 마침표 그 후

◇일러스트=조남원기자

국익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무겁다. 특히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이들이 변전소 그림자 아래 사는 주민이라면 더욱 그렇다. 동해안~신가평 초고압직류송전선로 건설이 13년 만에 주민 100%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소식은 마침내 바람 앞의 등불 같던 갈등의 실마리가 풀렸음을 알리는 신호다. 그러나 이 합의가 곧바로 해피엔딩을 뜻하진 않는다. 이는 오히려 새로운 출발선이다. 송전탑이 선 자리마다 남은 궤적은 단순히 철탑이 아니라, 이해와 양보, 때로는 체념이 쌓인 흔적이다. ▼‘형설지공(螢雪之功)’. 반딧불과 눈빛에 의지해 글을 읽으며 학문을 이룬다는 이 고사성어는 인내의 상징이다. 이번 송전선로 사업을 둘러싼 13년의 세월도 다르지 않다. 주민은 그 시간 동안 ‘수도권의 전기’를 위해 땅과 생활권을 내어주고, 신뢰를 요구받았다. 누구는 국가를 위한 결단이라 했고, 누구는 지역을 위한 저항이라 했다. 결국 이 오랜 줄다리기의 끝은 주민의 굴복이 아닌, 국익이라는 이름의 타협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그간의 갈등을 ‘이겨냈다’는 식의 일방적 성과 포장이 아니다. 동서울변환소 증설에 대한 여전히 남아 있는 반발은 그런 인식의 위험을 방증한다. 송전선로는 전기를 보내는 통로지만, 동시에 감정을 잇는 통로이기도 하다. 보상보다 중요한 건 진정성 있는 소통이고, 전자파 수치보다 무거운 건 주민의 불안감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고압선 아래, 누군가는 오늘도 창밖을 내다보며 자신이 내준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되묻게 된다. 국책사업이라 해 주민의 희생으로 전락하는 순간 국가는 국가일 수 없다. ▼‘예기(禮記)’는 말한다. “나라가 바르게 다스려질 때는 작은 사람의 말에도 귀 기울인다.” 국책사업의 완성은 땅에 철탑을 세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세워진 땅에 사는 사람들과 신뢰의 탑을 함께 쌓는 일이 더 중대하다. 송전선로는 국가 에너지 정책의 대동맥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심장박동을 유지하려면 말단 모세혈관까지 피가 잘 통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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