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기준 강원특별자치도의 연령표준화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328.5명, 전국 (299.7명)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서울과 비교하면 어떨까. 같은 해 서울에서는 인구 10만명당 256.8명이 사망해 강원지역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가 무려 71.7명 더 많았다.
높은 사망률은 아파도 적절하게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환경 속에서 악화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주민들을 적절하게 치료해줄 수 없는, 열악한 의료 인프라가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최근 강원대병원 임상교수, 춘천노인전문병원장으로 부임한 주영수(60) 전 국립중앙의료원장(2022-2025)은 오랫동안 보건의료 영역의 불평등 문제를 연구해온 대가다. 코로나19 시기에는 감염병의 최전선에서, 이후에는 의정갈등의 폭풍 속에서도 공공의료의 사명을 꿋꿋이 지켜온 전문가이기도 하다. '지역불평등과 공공의료'라는 주제를 들고, 주 원장을 3일 강원대병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퇴임 이후 또 어려운 일을 하러 부임했다. 선택의 계기가 궁금하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구상했던 ‘필수의료 지역완결 시스템’을 구현해보고 싶었다. 지난 정부 3년간 공공의료는 답보 상태였다. 국립중앙의료원장으로서 의료원을 망가지지 않게 지켜냈다고 나름대로 자부하지만, 더 나아갈 수는 없었다. 그 사이 지역의 불평등은 심각해졌다. 강원도는 가장 열악한 지역이다. 지표로 따지면 전남 등, 전국 여러 곳에도 다양한 문제가 있지만, 강원도의 불평등은 더욱 심각하다. 지역이 넓은데다가 주민들이 당장 의료를 이용할 수 있는 광역수준의 도심조차 인근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열악한 지역에서, 그동안 만들어온 모델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무엇이 문제라고 보나
"우선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문제다. 한국은 민간병원 비중이 전체 병원의 약 95%나 된다. 이런 시장중심적인 의료체계로는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를 온전히 책임지기 힘들다. 그동안 취약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공공병원들이 의료형평성 제고와 필수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이 또한 제대로 하기에는 공적인 지원들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두 번째는 현실에 잘 맞지 않는, 국가의 공공보건의료 운영전략에 문제가 있다. 정부는 2018년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세웠고, 두 차례에 걸쳐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도 발표했다. 현재 3차 기본계획을 작업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지역 주민의 의료를 책임지는 관점에서는 누락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강원도는 비록 150만명의 인구만 살고 있지만 지역적으로는 무척 넓다. 그럼에도 권역책임의료기관은 강원대병원 1곳뿐이다. 게다가 강원대병원이 2차병원이다 보니 병원의 임상적 수월성 측면에서도 많은 한계가 있고, 의료 이용자 관점에서도 영동지역이나 강원남부 주민들이 강원대병원까지 올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이런 디테일들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는데, 아직 정부의 정책은 지역적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강원대병원에서 구상하는 시스템은 무엇이 다른가
"임상적 측면에서는 현재의 강원 권역을 다시 3개 하위 권역으로 나누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춘천을 중심으로 한 영서 북부, 원주를 중심으로 한 강원 남부, 그리고 영동이다. 이렇게 나눠진 하위 권역은 일종의 중권역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의 '정책적' 권역책임의료기관 개념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의 법·제도적 권한집행을 위해서는 당연히 자격이 있는 공적인 책임의료기관이 필요하고, 게다가 3개의 하위 권역들의 기획·예산·조직·행정 등에서의 다양한 보건의료실무를 총괄하고 지원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스템을 재구성할 수 있다면, 강원대병원은 결국 강원도 보건의료를 중심에서 이끌어가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있는 70개 중진료권과의 개념이 혼란스럽다. 리더십이 실제로 기능할지도 의문이다.
"70개 중진료권은 진료권대로 필요하다. 물론 중진료권의 추가 혹은 재배치 등에서는 다소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향후 개선의 여지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다만 강원지역에서 추가적인 고난도의 임상의학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 해당 지역에서 접근성이 높은 대학병원이 역할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강릉과 원주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전원이 필요한 경우 그 인근 중진료권들에서의 연계를 '공식화'해주자는 것이다. 전제로는, 현재 상대적으로 취약한 강원대병원이 권역책임의료기관답게 임상적 기능을 최대한 회복할 수 있도록 제한 없이 지원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강원권역의 대학병원들, 지방의료원들, 전문병원들, 의원들과 협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지원이 적절하게 이뤄지면, 주민에게 그 혜택이 돌아오게 할 수 있나? 의사조직은 언제나 더 지원해줘야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반면 지원받은 결과를 주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조직 차원의 책임감은 부재하다.
"일단 공적인 역할을 하는 조직들의 국민에 대한 책임성 문제제기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특히 의사조직에 대한 문제제기는 더욱 깊게 공감한다. 의정갈등 사태를 겪으면서, 한 사람의 의사가 배출되기까지 많은 사회적 지원과 배려가 있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의사가 된 후에는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과거 20년간 의대 교수로 일했던 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과연 나는 선생으로서 어떻게 후학들을 가르쳐왔던 것인지……. 어찌 보면 의대교수들과 선배의사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일단 너무 신뢰를 잃은 상태라서 ‘책임감’을 행동으로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 한 국민들을 설득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심히 계속 더 노력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어떻게든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 하며, 그렇다면 그 시작은 취약한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강원대병원의 경우는 필수적인 임상영역의 필요한 의사인력이 충분히 갖춰지도록 대단히 파격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간호 혹은 돌봄인력 또한 병상운영에 무리가 없도록 제대로 충원한 뒤 제도적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주민들에게 병원에 가면 언제든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인력을 갖춘 뒤에는 무엇을 할 예정인가. 거버넌스는 지방정부, 행정조직에도 책임성이 부여되는 구조여야 한다.
"현재 언론에서 보도되는, 국민들이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도는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는 지나치게 전문화된 의료체계를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사고를 당해 다리도 부러지고, 척추도 부러졌다고 해보자. 지금은 병원들이 다리와 척추, 어느 한쪽 전문의만 없어도 환자를 받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체계 안에서 그런 환자는 갈 곳이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렇듯 지나치게 전문화된 의료인 양성 시스템은 손봐야 한다. 물론 당장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양성 체계를 처음부터 모두 바꾸는 일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주민들의 피해는 누적될 것이므로, 일단 단기간에 일부영역에서라도 강원도 권역 내 의료인들 대상으로 교육·훈련을 시행할 수 있는 방안을 강원대병원에서 시범적으로 찾아봤으면 좋겠다. 강원대병원에서는 각종 세부 전문의를 모두 갖춘 뒤, 그 전문의들이 다학제적으로 통합적인 진료를 제공하면서 강원권역의 지방의료원 전문인력을 재교육하는 방식을 도입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소아 환자를 소아과에서만 보는 방식도 이제는 넘어서야 한다. 어느 범위의 질환 내에서는 소아 환자가 와도 내과계 의사가 진료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도 한 예가 될 것이다. 이렇게 확장하면 다른 진료과들로도 점차 확장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지나치게 세분화된 진료제공체계는 지역의료에 맞는 모델이 아니다. 어느 정도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면 중앙정부, 지방정부와도 협의해 공식적인 시범사업으로 선정될 수 있도록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미 강원대병원에서 의사 부족 사태가 대두됐을 때, 내부적으로 논의된 적 있었던 방안이다. 하지만 모두 무산됐다. 주민 신뢰를 얻으려면 조직 내부 리더십을 먼저 해결하고, 참여와 동의를 얻기 위한 활동도 해야 한다.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병원장 등 원장단이 중심이 돼 추진하고 있고, 병원 안에서도 여러 부서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예전과는 달리 논의를 통해 방안을 도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주민 신뢰와 관련해서도, 참여와 동의를 얻을 방안이 있다면 열심히 모색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장으로 부임한 춘천시노인전문병원은 그 체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의료와 돌봄을 통합하고 연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앞서 말한, 다리와 척추가 부러진 노인 환자라면 의학적인 문제 외에도, 대소변 문제, 음식섭취 문제 등 여러 가지 '돌봄'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급성기 중심의 병원체계에서는 환자가 적절한 돌봄을 받기 어렵다. 고령화율이 높은 강원도라면 고령 환자들이 아플 때 언제든지 적절한 의학적인 치료와 통합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더욱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특히 강원대병원과 춘천시노인전문병원이 원활한 역할분담을 통해 동시에 주민들에게 의료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체계를 다듬는데 힘쓰고, 그러면서 주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가능하다면 적어도 향후 10년을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의료계획을 확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