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광복 80주년 경축사에서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 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가운데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이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한국은 우리 국가의 외교 상대가 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부부장은 지난 19일 외무성 주요 국장들과 협의회를 열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외정책 구상을 전달 포치(지도)했다고 20일 보도했다.
이어 "확실히 리재명 정권이 들어앉은 이후 조한(남북) 관계의 '개선'을 위해 무엇인가 달라진다는 것을 생색내려고 안깐힘을 쓰는 '진지한 노력'을 대뜸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악취 풍기는 대결 본심을 평화의 꽃보자기로 감싼다고 해도 자루 속의 송곳은 감출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부부장은 이 대통령이 지난 18일 을지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한 "작은 실천이 조약돌처럼 쌓이면 상호 간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는 발언을 거론하며, "그 구상에 대하여 평한다면 마디마디, 조항조항이 망상이고 개꿈"이라고 쏘아붙였다.
아울러 "우리는 문재인으로부터 윤석열에로의 정권 교체 과정은 물론 수십 년간한국의 더러운 정치 체제를 신물이 나도록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들"이라며 "결론을 말한다면 '보수'의 간판을 달든, '민주'의 감투를 쓰든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한국의 대결 야망은 추호도 변함이 없이 대물림하여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리재명은 이러한 력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위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또 정동영 통일부 장관, 안규백 국방부 장관, 조현 외교부 장관의 실명도 일일이 거론하며 비난했다. 안규백·조현 장관이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지난 18일 시작된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연습에 대해서도 "침략전쟁연습"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화해의 손을 내미는 시늉을 하면서도 또다시 벌려놓은 이번 합동군사연습에서 우리의 핵 및 미싸일능력을 조기에 '제거'하고 공화국 령내로 공격을 확대하는 새 련합작전계획('작계 5022')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부부장은 국제무대에서 한국과 외교전에 주력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그는 "한국에는 우리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지역외교 무대에서 잡역조차 차례지지 않을 것"이라며 "외무성은 한국의 실체성을 지적한 우리 국가수반의 결론에 립각하여 가장 적대적인 국가와 그의 선동에 귀를 기울이는 국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적중한 대응 방안을 잘 모색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이제는 낡은 냉전의 사고방식과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한반도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남북 대화는 수많은 부침 속에서도 이어졌지만, 지난 정부에서는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며 "엉킨 실타래일수록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풀어야 하며, 먼 미래를 말하기 전에 지금 당장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정부가 취임 직후부터 전단 살포 및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남북관계에 대해 "남과 북은 서로를 존중해야 할 특수한 관계"라고 규정하며,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긴 정신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 판문점 선언, 9·19 공동선언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우리 정부는 기존 합의를 존중하며 이행 가능한 사항부터 실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이고 단계적으로 복원할 것”이라며, “광복 80주년인 올해가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의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북측이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에 응답해주길 기대하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통령실은 20일 김 부부장이 정부의 '남북 신뢰 회복 노력'을 비난한 것과 관련해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들은 일방의 이익이나 누구를 의식한 행보가 아니라 남과 북 모두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어 "정부는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뒤로 하고 한반도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반드시 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대화와 신뢰를 회복하려는 일련의 조치에 대해 북한이 호응하지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거듭 인내하면서 손을 내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