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쿠팡 외국인 임시대표 청문회 나와 동시통역 거부, 같은 대답 반복, 위원들 질문에 격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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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의장, 김유석 부사장, 강한승 전 대표 모두 증인 출석 안해…위원들 질의 로저스 대표에 집중
일부 청문위원들, 유출된 개인정보 배송·이메일 주소, 주문 데이터 등 총 7억 건 이상…계속 증가 주장
과기정통부 장관 “쿠팡이 발표한 용의자 '개인정보 3천개 확인' 주장 동의 못해…지극히 악의적 의도”
국세청장 “철저하게 조사해 조세 정의 확립…미국 국세청과 최대한 공조, 쿠팡은 한국 국민이 키운 기업”
금융위원장 “쿠팡 대출 상품인 '쿠팡 판매자 성장 대출'의 금리 수준과 상환 방식 적정한지 따져보고 있어”

◇30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 참석한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 연합뉴스.

3천만명이 넘는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난 쿠팡의 해롤드 로저스 임시대표가 30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 나와 청문위원들의 질의에 수차례 목소리를 높이며 불쾌감을 표시하고 동시통역 요청을 거부한 것은 물론, 질문에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해 질타를 받았다.

로저스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자체 조사 의혹, 과로사 은폐 의혹 등을 제기하는 위원들의 질문에 답했다.

지난 17일 열린 청문회에서 로저스 대표의 '동문서답'이 논란이 된 데다 오역 지적이 제기된 터라 이번 청문회에서는 동시통역까지 준비됐으나 로저스 대표가 자신이 대동한 통역사의 통역에 의지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청문회장에는 초반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청문회 개의 직후 최민희 위원장이 동시통역기 사용을 여러 차례 요구하자 "통역사의 대동을 허락받았다", "제 통역사를 사용하고 싶다"고 맞섰고 나중에는 "정상적이지 않다. 이의제기하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30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 참석한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 연합뉴스.

최 위원장은 쿠팡 측 통역에게 "지난번에 중소상공인들에게 대출해 주는 이자에 대한 질문 있었다. 로저스 대표가 '로이스트 레이트'(lowest rate·가장 낮은 이율)라고 했는데 그때 (의원들에게) 어떻게 통역했느냐"고 물었고 통역은 "'낮은 편에 속한다'고 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최 위원장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했다. 그렇게 통역하면 안 된다. 그렇게 윤색해서 통역하시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청문회 중반 로저스 대표가 '(조사를 내부에) 지시한 사람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정부 기관의 지시를 받았다"는 대답을 반복하자 최 위원장이 오역되는 것 같다며 통역사에게 자신의 말을 단어 단위로 통역하도록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청문회에선 쿠팡의 창업자이자 실소유주인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 그의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대표 등 핵심 세 명이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아 위원들의 질의는 로저스 대표에 집중됐다.

로저스 대표는 위원들의 질문에 여전히 방어적이고 반복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는 지난 달 제주에서 쿠팡 새벽 배송을 하다 사고로 숨진 택배 노동자 고(故) 오승용씨 유족의 사과 요구에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했지만, 산업재해 인정과 보상을 요구하는 말에는 "(가족 대표자와)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같은 대답만 반복했다.

창업주 김 의장에 대한 질의에는 엉뚱한 답변을 하거나 직접 언급을 피한 채 옹호하는 모습도 여전했다.

◇30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 참석한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 연합뉴스.

로저스 대표는 '김 의장이 사태에 책임이 있나'라는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위원의 질의에는 김 의장에 대한 언급 없이 "저는 쿠팡의 한국 대표로서 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만 답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고 장덕준씨 과로사와 관련해 김 의장이 노동 강도를 축소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한 증거가 여러 차례 제시되자 로저스 대표는 증거가 나올 때마다 "이 문서들의 진위가 확인된 바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진위를) 모르면 당사자인 김 의장에게 물어봐야지, 왜 묻지 않나. 김 의장이 신인가. 김 의장이 이랬을 리 없다고 그냥 믿는 거다. 신앙의 영역"이라고 맹비난했다.

역시 증인으로 출석한 박대준 대표도 이 사안과 관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가 최 위원장으로부터 질타받기도 했다.

개인정보 유출 관련 조사와 관련해 '김 의장은 무엇을 했나'라는 질문에도 "쿠팡의 자체 조사는 없었다. 정부의 지시에 따라 했던 조사다. 왜 이 점을 부인하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김 의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최 위원장은 로저스 대표를 향해 "대화가 안 된다", "답변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고, 나아가 "김 의장은 왜 한국말의 함의를 모르는 사람을 내세워서 이런 장난질을 하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문위원들이 '예, 아니요'식 단답형을 요구하자 로저스 대표가 위원들의 질의를 끊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도 여러 차례 관찰됐다.

영문 사과문에 쓰인 'false'(폴스·사실이 아닌) 표현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성실하게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저희가 정부에 협력하지 않고 있다는 허위 정보(misinformation)가 있다. 저희가 자의적으로 했다고 생각하십니까"며 목소리를 높였다. 발언하면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격앙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질의를 한 정일영 위원이 "됐다. 그만하라"며 답변을 끊자 그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Enough"(그만합시다)라고 맞받았다.

로저스 대표는 또 정부기관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호통치듯 "한국 국민에게 정보를 알리는 것을 원치 않나. 왜 이 정보를 한국 국민에게 감추고 있나. 이해되지 않는다"라고도 했다. 청문위원들의 항의 속에 말을 마친 뒤에는 어이없다는 듯이 어깨까지 으쓱해 보였다.

◇사진=연합뉴스.

로저스 대표가 지속적으로 정부기관으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자 최 위원장은 "쿠팡이 대한민국 정부까지 끌어들여서 간 크게 진실게임으로 몰아가려는 돼먹지 않은 전략을 벌이고 있다"고 일갈했다.

또, 로저스 대표는 '국가정보원과 소통했느냐'는 민주당 황정아 의원의 질의에 "저희는 피의자와 연락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서 그 기관(국가정보원)에서 피의자와 연락하기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기관(국정원)은 저희가 협력해야 한다고 말을 했고, 한국 법에 따라서 사실 협조 요청은 구속력이 있고 지시에 따라야 된다라고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로저스 대표는 "지시 명령이었다"고 주장한 뒤 용의자를 만난 장소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만났다"고 답했다.

그는 '국정원 누구와 소통을 했느냐'는 질의에는 "지금 이름에 대한 정보는 없는데 해당하는 이름을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로저스 대표는 용의자를 접촉하라고 지시한 회사 내부자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우리에게 지시를 내렸다"며 "왜 이 정보를 한국민과 공유하지 않고, 감추고 있나. 회사 내에서 누구도 지시하지 않고 정부 기관이 팀에 직접 지시했고 따랐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같은 당 김영배 의원은 "범죄 행위라서 본인의 역할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이재걸 쿠팡 법무 담당 부사장은 "(국정원이) 내부에서도 일부에만 공유하고, 다른 정부 기관에도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했다"며 "정부 기관으로부터 계속 지시를 받아서 그 직원이 한 것"이라며 "범행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로저스 대표는 해킹에 사용된 장비의 포렌식 결과에 대해서는 "정보기관이 복사본을 가지고 있고, 원본은 경찰에 전달했다"며 "그 정보기관이 저희가 보유할 수 있도록 별도의 카피를 또 만드는 것을 허락했다"고 말했다.

또 '쿠폰을 통한 보상이 미국 집단소송 공정화법에 저촉된다'는 민주당 김우영 의원의 질의에는 "(의원 지적은) 집단소송에 대한 것이고, 저희는 자발적 보상안에 대한 것"이라고 저촉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추가 보상 계획에 대해서는 "보상안은 1조7천억원에 달한다. 전례가 없는 보상안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로저스 대표는 또 김 의장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협의했다"면서도 "결정은 쿠팡 한국에서 내렸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 조국혁신당 소속 청문위원들은 청문회 진행 중 별도 성명을 내고 쿠팡에서 유출된 데이터가 총 7억 건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청문위원들은 쿠팡 개인 정보 유출 사태의 용의자인 전 직원이 쿠팡에 보낸 경고 메일을 확보했다면서 "배송주소 데이터가 1억2천만 건 이상, 주문 데이터가 무려 5억6천만 건 이상, 이메일 주소 데이터는 3천300만 건 이상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이 직원은) 일본·대만 쿠팡 애플리케이션과 웹사이트에서도 100만건 이상의 배송지 주소, 400만건 이상의 주문, 45만건 이상의 이메일 주소가 유출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출 데이터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직원이 '내부고발자'를 자처하며 금전적 요구 등이 아닌 데이터 유출 취약점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보낸 메일에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더해 이날 청문회에 참석한 '쿠팡 사태 범정부 TF' 팀장인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최근 쿠팡이 '정보 유출 용의자인 전 직원을 자체 조사한 결과 계정 3천개만 확인했고 나머지는 삭제했다'고 발표한 데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며 "3천300만 건 이상의 이름, 이메일이 유출됐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경찰청, 민관 합동 조사단에서 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추가로 배송지 주소, 주문 내용도 유출한 것으로 본다"며 "쿠팡 측이 합의되지 않은 결과를 사전에 발표했다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싶다. 지극히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배 부총리는 "용의자가 쿠팡 서버에 접속해서 마음껏 고객 정보를 확인하고 필요한 정보를 다운로드한 것"이라며 "쿠팡은 용의자 노트북, 컴퓨터 저장 장치 총 4개 중 노트북을 압수해서 그중 확인된 3천 건을 유출된 정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용의자가 노트북, 컴퓨터 외에도 클라우드에 정보를 올렸을 수도 있으며 이러한 모든 분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부총리는 쿠팡 측이 정부 지시에 따랐다며 국가정보원이 지목된 데 대해 "노트북 등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유실, 국제적인 (사이버 공격) 배후 사태로 활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송 과정을 협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쿠팡에 지시할 수 있는 것은 플랫폼 주무 부서인 과기정통부이지 국정원 지시 권한은 없다"고 했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도 "정부에서 어떤 기관도 쿠팡의 자체 조사를 지시하거나 개입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임광현 국세청장도 청문회에 나와 쿠팡 김 의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 의지와 함께 미국 국세청과 공조 가능성을 내비쳤다.

임 청장은 "국세청은 (쿠팡) 세무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철저하게 조사해 조세 정의를 확립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그는 '미국 국세청(IRS)에 공조 요청을 고려하겠냐'는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의 질의에 "공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하겠다"고 답했다.

이 의원은 "한미 국세 조약 등에 근거해 한국 국세청이 미국 국세청에 공조를 요청할 수 있다"며 "특히 쿠팡과 같은 역외거래 비중이 높은 기업은 정보 교환을 넘어서 세무 조사까지 끌고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의 공조 요청으로 쿠팡 미국 본사의 의사 결정 관련 자료 등을 미국 국세청으로부터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이 의원의 주장이다.

국세청은 지난 22일 쿠팡의 탈세 혐의를 포착하고 전방위 특별세무조사(비정기 조사)에 착수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과 국제거래조사국을 동원해 쿠팡 미국 델라웨어 본사를 비롯한 쿠팡 그룹 차원의 이익 이전 구조를 정밀히 조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 청장은 "(탈세 정황이) 다양하게 있다"며 "국내외 특수관계법인 간의 내부 거래 적정성 여부에 철저히 살펴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 역외 탈세 단서나 물증이 있냐는 민주당 김우영 의원의 질의에는 "조사가 진행 중이라 구체적으로 답할 수는 없지만 모든 부분을 철저하게 조사 요원들이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쿠팡이 상장을 위해 미국에 법인을 설립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연결 재무제표상 대부분의 매출이 국내에서 발생하는 한국 국민이 키운 기업"이라며 "정당한 납세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지 철저히 확인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임 청장은 김 의장 개인에 대한 세무조사와 형사 고발을 전제한 조세범칙 조사 전환을 촉구하는 민주당 정일영 의원의 지적에 "조사4국의 세무조사는 조사 범위나 대상을 미리 예단하지 않는다"며 "혐의가 나오면 관련인으로 추가 선정해 끝까지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청문회에 나와 쿠팡의 대출상품인 '쿠팡 판매자 성장 대출'의 금리 수준과 상환 방식 등이 적정한지를 따져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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