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관료 출신 정치인이 만든 개념인 ‘지방 소멸’은 지방을 바라보는 가장 단순한 개념이다. 고령자는 늘지만, 다음 세대를 낳는 젊은 여성 인구는 유출되고 있으니 소멸 위기에 처했다는 논리는 지방 담론의 블랙홀이다. 척박한 땅을 일궈가며 대를 이어 존재한 마을의 생명력은 간과하고, 미래가 안 보이는 공간으로 만들며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을 부추긴다. 소멸 위기를 논하기 전에 한 마을의 역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연초부터 국내 출판계에서 화제가 된 책이 있다.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김세건 교수가 쓴 ‘겨리연장, 강원도를 담고 세우다’란 책이다. 홍천의 소 겨리를 중심으로 한국의 농경문화를 연구한 4,000쪽 분량의 대작이다. 소 겨리는 비탈지고 거친 땅을 일군 문화다. 소 한 마리의 힘으로도 부족해 두 마리가 함께 쟁기를 끌었다. ▼생존을 위해 만든 생산 도구는 사회 관계를 만들었다. 소 겨리의 본질은 ‘함께’이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없기에 가축의 힘을 빌렸고, 소와 사람은 하나가 됐다. 쟁기질을 하는 ‘밭갈애비’는 소에게 지시뿐만 아니라 신세타령을 하기도 했다. 소 두 마리가 있어야 했기에 두 집이 짝을 이뤄야 했다. 소 짝은 사람 짝이 됐다. 소가 있는 집과 없는 집도 협력했고, 생산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인공지능인 AI가 말만 하지 않고 로봇이 된 2026년에도 소 겨리가 의미가 있는 것은 ‘인간과 도구의 역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 겨리는 ‘함께 일하는 문화’였다면, AI는 ‘혼자 일하는 문화’가 보편화된 시대를 상징한다. AI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홍천의 농촌도 많이 달라졌다. 농기계 보급이 늘고, 인건비를 주고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고용하는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공동 노동은 많이 사라졌다. ▼이런 변화들은 무엇을 의미한 것일까. 단순한 ‘소멸론’ 이전에 지역에 필요한 담론이다. 홍천에는 겨리농경문화 보존회가 있고, 요즘 폐광지에서는 석탄 문화 유산 보존 논의가 한창이다. AI시대에 산업 유산 보존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