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단상]‘왕의 귀환’과 춘천

이미옥 전 춘천시의원

얼마 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BTS의 광화문 공연을 지켜보며 머릿속을 스친 단어다. 서울시는 공연을 위해 광화문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구간을 이른바 ‘가상 스타디움’으로 선포했지만, 사실 그들의 무대는 특정 구역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날 서울 전체, 아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무대였다. 세계 각지에서 푸른 눈, 금발 머리, 히잡을 쓴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완전체 7명이 무대 위에서 호흡하는 동안 세상의 다른 모든 소음은 정지된 듯했다. 이들은 단순한 가수를 넘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아티스트이자, K-컬처의 정수를 전파하는 국가 브랜드 그 자체였다. 공연 티켓 한 장이 만들어낸 파장은 음악 도시의 경계를 넘어 세계 경제의 지표를 흔들었다.

이러한 ‘문화의 힘’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우리는 멀지 않은 강릉에서도 목격하곤 한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커피 축제가 열리는 계절이 오면, 강릉은 도시 전체가 은은한 커피 향으로 물든다. 그것은 단순히 갈아낸 원두의 향기가 아니다. 커피를 매개로 한 수많은 체험과 공연, 그리고 그 골목마다 서려 있는 바리스타들의 이야기가 축제가 된다. 사람들은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안목 해변의 사색적인 바다 앞에 멈춰 선다. 이 ‘멈춤’과 ‘머무름’은 곧 지역의 생존을 지탱하는 수입이 된다. 검은 액체 한 잔이 쇠락해가던 어촌 마을과 도시를 다시 살려낸 것이다.

이쯤에서 필자는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도시, 춘천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의 중심에는 늘 ‘손흥민 축구장’이 자리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호령하며 세계 축구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손흥민이라는 이름. 그의 고향이자 그의 이름을 딴 축구장이 있는 이 공간은 이미 그 자체로 거대한 서사와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하지만 자문해 본다. 우리 춘천 시민 중 손흥민 축구장의 정확한 위치와 그 가치를 제대로 체감하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만약 우리가 이 축구장을 ‘왕의 귀환’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명명하고 불러낸다면 어떨까. 손흥민은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다. 그는 현대 축구계의 살아있는 상징이자, 수많은 역경을 뚫고 정점에 선 서사의 주인공이다. 그가 쌓아 올린 기록과 눈물, 환희의 과정은 마치 치열한 전장을 누비다 고향으로 돌아온 ‘왕의 귀환’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다. 이 강렬한 상징성을 한 개인의 명성을 넘어 도시의 축제로 확장해 본다면, 춘천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될 것이다.

내가 꿈꾸는 춘천의 모습은 축구를 공통언어로 사용하는 역동적인 도시다. 낮에는 전국의 어린 축구 꿈나무들과 청소년들이 잔디 위를 누비며 땀 흘리는 체험 프로그램이 활기를 띠고, 저녁이 되면 대형 전광판을 통해 유럽 현지의 경기가 생중계되며 수만 명의 함성이 호반의 밤공기를 가른다. 지역 상인들은 축구 테마의 먹거리 장터를 열어 외지인들을 맞이하고, 예술가들은 거리 곳곳에서 축구의 역동성을 담은 퍼포먼스로 축제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손흥민 선수의 전 세계 팬들이 순례하듯 춘천을 찾고, 그들이 이곳에서 며칠씩 머물며 손흥민의 발자취를 느끼는 이벤트는 상상만으로도 벅차다. 중요한 점은 축구가 가진 ‘머무름’의 속성이다. 90분의 경기 시간, 그리고 전후반 사이의 휴식, 경기 전의 설렘과 경기 후의 여운까지. 축구는 일회성 소비가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문화다. 낭만 도시 춘천은 이미 아름다운 의암호와 수려한 산을 품고 있다. 여기에 축구라는 세계 공통의 언어가 입혀진다면, 춘천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체류형 문화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다. 도시의 활력은 사람들이 머무는 시간의 총합에 비례하며, 지역 경제는 그 머무름의 순간에 비로소 살아나기 때문이다.

필자는 ‘왕의 귀환’이라는 장엄한 제목을 떠올리며 내일의 춘천을 상상한다. 적막했던 축구장에 화려한 조명이 켜지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활기가 넘쳐난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축제 음악이 어우러지는 그 광경의 중심에는 ‘손흥민’이라는 이름이 이정표처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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