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언대] 동학의 역사는 왜 다시 강원에서 시작되는가

읽어주는 뉴스

권소영 강원동학21 대표

 

동학농민혁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개 전라도와 충청도를 먼저 떠올린다. 황토현과 우금치, 그리고 전봉준으로 이어지는 치열한 항쟁의 역사는 이미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기념사업 역시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추진되어 왔다.

하지만 동학의 역사는 혁명의 역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혁명의 불꽃이 어떻게 살아남았고, 어떤 지역에서 그 정신이 이어져 왔는가를 함께 바라볼 때 비로소 동학의 전체 모습이 드러난다. 지금 강원동학이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강원의 동학은 단순한 봉기의 역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학의 본질인 인간존엄과 공동체 정신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 했던 움직임이었다. 동학이 혹독한 탄압 속에서 존립 자체를 위협받던 시기, 강원 인제에서는 동경대전이 간행되며 동학의 사상과 철학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이는 단순한 출판의 의미를 넘어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동학 정신을 지켜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홍천 풍암리 자작고개 역시 강원동학의 중요한 현장이다. 1894년 이곳에서는 동학혁명군과 관군 사이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수많은 백성들이 희생됐다. 그러나 강원의 동학은 전투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정신의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바라본다. 이름 없는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것은 단지 체제에 대한 저항만이 아니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세상,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염원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그동안 동학은 주로 혁명과 항쟁의 관점에서 조명돼 왔다. 물론 그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가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가 동학에서 다시 발견해야 할 것은 단순한 저항의 기억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이 오늘의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다시 묻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갈등과 분열 속에 놓여 있다. 경제적 양극화와 지역소멸, 세대 간 대립과 인간소외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가치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동학이 말했던 존중과 공존의 철학은 새로운 시대적 의미를 갖게 된다.

강원동학이 추구하는 방향도 여기에 있다. 강원의 동학은 과거의 역사를 단순히 추모하거나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동학의 본질적 가치를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인간존엄과 상생, 공동체와 생명의 가치를 지역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 그것이 강원동학이 지향하는 길이다.

최근 강원특별자치도의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조례 제정과 홍천군 조례 제정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이제 강원의 동학 기념사업은 단순한 행사 중심을 넘어 역사교육과 문화콘텐츠, 공동체 회복과 미래세대의 가치 형성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강원이 가진 동학의 정신적 자산을 오늘의 시대와 연결하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는 단지 과거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그 안의 의미 역시 새롭게 해석된다. 동학 또한 마찬가지다. 130여 년 전 백성들이 외쳤던 인간존엄과 평등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 정신을 삶 속에서 다시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강원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니다.

동학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강원은 동학을 기억하는 지역을 넘어, 동학의 본질을 오늘의 시대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라이프

이코노미 플러스

강원일보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