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일상생활 야구에 접목
시련올때마다 할수있다 믿어
야구도 삶도 전력질주 해야
18년간 야구만 해왔다. 관중이 가득한 야구장에 홀로 야구방망이를 들고 서 있는 것 보다 더욱 긴장되고 어렵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 우여곡절 많은 32년간의 야구인생 역정을 통해 강원도 경제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 야구선수로 살아온 18년
대한민국 야구의 최고기록 9개를 보유한 전 야구선수이다.
'야구' 하나만 보며 살아온 지난 32년, 야구선수로서의 삶을 마무리 지은 지금은 사회로 나온 지는 얼마 안 된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야구선수로서의 삶은 영광스러웠다. 대한민국 야구 최고기록은 다 가지고 있다. 기록은 그 선수의 성적표이다. 최다 홈런 351, 최다 안타 2,318, 최다 사사구 1,380…. 그중에서도 2002년은 최고의 기쁨과 시련을 맛 본 해였다.
LG 트윈스에서 삼성 라이온스로 올 때 김응용 감독이 팀의 리더가 되어 달라고 했고, 외야 수비가 되냐고 해서 둘 다 된다고 했다. 그러나 삼성에서는 내가 오는 걸 98%가 반대했었다.
김응용 감독, 김재하 단장 두사람만 양준혁이 와야 우승할 수 있다고 밀어붙였고 결국 두사람의 힘으로 삼성으로 컴백할 수 있었다. 나는 팀에 와서 땅도 고르고 또 후배들을 혼도 냈다. 무엇보다 러닝할 때 맨 앞에서 뛰었고 시합에 못 나가도 벤치에서 박수 치고 등 두드려 주고, 팀을 하나로 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해, 결국 우승을 했고, 내 생에 최고의 해로 남았다.
■ 실패의 끝은 성공
하지만 나는 10년 연속 3할에 실패했다. 그래서 내가 해왔던 모든 생각, 마인드, 타격의 기술 전부를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비디오 보고, 분석하고…. 실패 또 실패를 맛보았지만 끝까지 파고들었다.
실패를 수천번 하면서 그 실패를 거울 삼았고, 그 실패를 데이터로 남겼다. 그리고 고생 끝에 만세타법을 찾아냈다.
이 모든 걸 일깨워 준 친구가 이승엽 선수이다. 2002년 트레이드돼 와 봤더니 홈런 54개 친 타격폼을 바꾸는 걸 봤다. 그때 홈런왕이 된 타격폼을 왜 바꾸나 싶었다. 그런데 2003년 홈런 56개 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만족하지 않고 계속 자신을 채찍질하는 이승엽 선수를 보고 많은 걸 배웠다.
깨달음을 얻고 내가 생각한 건 모든 일상을 야구와 접목해야겠다는 거였다. 낚시를 할때도 찌를 보면서 집중력을 키우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을 때도 타격연습을 했다. 나중에는 당구채와 젓가락, 마이크 등 길죽하게 생긴 물건이 다 야구방망이로 보일 정도였다.
■ 1루까지 전력으로 뛰어야 진짜 프로
프로선수 생활을 18년 동안 했다. '만약 내 선수생활이 순탄했다면 과연 내가 18년간 야구를 해 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시련과 위기가 왔고, 그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그 시간을 밟고 섰기에 좀 더 강해지지 않았나 싶다. 운명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목표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그 불운이 더 큰 행운이 되어 찾아 오곤 했다.
시련 없는 인생은 없다. 다만 그것을 뚫고 나가느냐, 거기서 멈춰 서느냐의 차이이다. 나는 시련이 올 때마다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극복했다. 아직 인생은 많이 남아 있다.
메이저리거는 항상 전력으로 뛴다. 야구는 곧 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전력질주를 하지 않으면 신을 모독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이다. 나는 2인자의 그늘에서 시작한 선수였지만 은퇴할때는 1인자라는 칭송을 들었다. 지금 나는 인생의 2루에 서 있다. 앞으로의 인생도 전력질주할 거다. 나와 같이 뛰자. 지금은 비록 절망적일지라도, 힘을 내면 웃으며 지금을 회상할 날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