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땔감 팔러 다녔던 제진역 늘 사람 붐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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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 DMZ 사람들]철도 연결 고대하는 실향민들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교류가 활발히 이어지면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 민통선 인근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도 기대된다. 고성군 남북출입사무소 동해선 출경게이트 전광판에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고성=박승선기자

동해안 최북단 마을 명파리 거주

옛 제진역·동해북부선 열차 기억

고성군 제진 일대 주민들은 6·25전쟁으로 군사분계선이 그어지고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 생기면서 고향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제진역 일대는 전쟁 전 명호, 송현, 사천, 제진 등의 마을이 해안가를 따라 자리 잡고 있었다. 돌아갈 곳을 잃은 주민들은 피란지에 정착했고, 일부는 현 동해안 최북단마을 명파리에 살며 고향을 그리워했다. 명파리에서 만난 김영수(74)씨는 1951년 1·4 후퇴 때 국군을 따라 고향 명호리를 떠났던 7세 때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김씨는 “쌀 한 말을 짊어진 채 부모 손을 잡고 속초로 피란을 갔다가 1958년에 명파리에 왔다”며 “고향 집과 밭을 찾겠다고 갖은 노력을 다해 1977년에 밭 일부를 찾아 지금까지 민통선을 오가며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와 땔감을 팔러 다녔던 제진항(저진항)과 제진역은 늘 사람이 붐볐다”고 회상했다. 제진역은 현 위치보다 국도 7호선과 바다를 향해 치우쳐 있었고 항구와 거리도 1~2㎞로 가까워 지금은 폐역이 된 명호리 초구역보다 규모가 컸다. 김씨는 2007년 제진역에서 북측열차 시범운행을 참관하며 50여 년 만에 동해북부선과 재회했다.

명파리 주민 이용한(89)씨는 고교생 당시 고성읍 내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탔던 동해북부선 열차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씨는 “고성읍에 기차 부품 공장이 있을 정도로 제진·고성읍 일대에 기차 관련 일이 많았다”고 했다. 그도 고향에서 철도업을 하고 싶어 전쟁 전 함흥 철도기술원양성소에 들어갔다. 김남술 명파리 노인회장은 “전쟁이 끝나고 명파리 마을이 다시 생길 때 제진 일대 주민들이 많았는데 다 죽고 떠나버려 당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거의 남지 않았다”고 했다.

고성=정윤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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