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이사박스 속 ‘위민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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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정치부기자

6월 말, 도의원 연구실이 모여있는 강원자치도의회 지하층을 찾았다. 11대 도의회 전반기 마지막 회기였던 제329회 정례회가 폐회하고, 후반기 출범 준비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연구실이 늘어선 복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노란 이사박스였다. 전반기 종료와 함께 연구실 배치가 바뀌며 퇴실 작업이 한창이었던 탓이다. 깨끗하게 비워져 다음 주인을 기다리는 사무실을 들여다보며 후반기 의회를 향한 기대감을 키웠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이사박스에 담겼던 집기들은 새로운 자리를 찾아갔지만, 의원들의 마음가짐은 원 구성 갈등 여파로 아직까지 전반기와 후반기 사이 그 어디쯤을 배회하는 모양새다.

도의회에서는 후반기 첫날부터 의원들끼리 멱살을 잡는 일이 벌어졌다. 후반기 출범을 기념해 몇몇 의원들끼리 저녁 자리를 갖던 도중 붙은 언쟁이 육체적인 실랑이로까지 번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 의원은 셔츠 단추 두 개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선 “후반기 의장단 선거로 인한 갈등이 원인이 됐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시·군의회도 예외는 아니다. 전체 23명 의원 중 13명이 국민의힘, 9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춘천시의회는 부의장과 위원장직 배분을 두고 잡음을 겪었다. 다수당으로 주도권을 쥔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요구한 부의장과 복지환경위원장 2석 중 위원장직 1석만 내주며 민주당 의원들의 빈축을 샀다. 원주시의회에서는 국민의힘 소속 의원 3명이 원 구성 과정에서 동료 의원들로부터 ‘당론 위배’를 이유로 제명을 요구받자, 탈당해 새로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일이 있었다. 또 다른 기초의회 소속 의원 역시 원 구성 과정에서 ‘당론 위배’로 민주당 도당윤리심판원 윤리위원회에 회부돼 ‘제명’ 처리되기도 했다.

한 달째 의장단 선출 일정조차 잡지 못한 지역도 있다. 여야 의원이 4대4로 동수인 홍천군의회는 야당 측 의원들이 여당 소속인 현 의장의 연임에 반대하며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빌미로 여야 도당은 상대 깎아내리기에 한창이다. 어느 당이 더 핵심 자리를 차지했느냐에 따라 번갈아 논평을 내며 ‘누가 더 민의를 거슬렀는지’ 입씨름이 치열하다. ‘민의’를 명분 삼았지만 감투싸움임을 주민들은 모르지 않는다. 싸움을 위한 싸움이 격해질수록 신뢰가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신청사 건립, 700%에 달하는 도개발공사 부채율 문제,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 개발, 강원특별법 3차 개정 등 강원도와 의회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각 시·군의회 역시 주민 삶과 직결되는 지역 현안들이 조속한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현안을 해결하려면 원 구성의 본래 취지를 살리고, 협치의 길을 찾아야 한다. 진영 논리로 인한 의원들의 대립과 의회 운영 발목잡기가 반복돼선 안 된다.

감투에 눈이 멀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의원들의 ‘위민정신’이 하루빨리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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