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통과 사회의 부조리를 일갈하고 통찰하는 시(詩)를 선보여 온 평창출신 권혁소 시인이 새 시집 ‘거기 두고 온 말들’을 펴냈다. 1984년 등단과 함께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은지 꼬박 40년만에 상재하는 그의 여덟번째 시집이다. 시가 주는 느낌은 전작인 ‘우리가 너무 가엾다(삶창시선 刊)’와 크게 다르지 않게, ‘진정성’이라는 큰 강으로 그대로 이어져 흐른다. 아리게 다가오는 슬픔 그리고 아픔의 정서는 여전한데, 그에 더해져 관조의 시선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런가하면 아주 살짝, 옅은 미소를 피어나게 하기도 한다. 시작(詩作) 인생 마흔돌을 자랑할 만도 하지만 시인에게는 그가 지나친 모든 것에 대한 회한의 감정이 먼저 스친 듯 하다. 표제작이 그렇다. 교사로서 첫 부임지인 태백 탄광촌에서 아이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사과의 말을 건네는 부분에서는 처절함 마저 느껴진다. 시집을 펼치면 “새로운 절망은 늘 너무 가까운데 있다(시 ‘육십년만에’)”는 그의 말에 격한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다가 덤덤하게 자신의 삶의 신념이나 철학을 되뇌는 지점(시 ‘용기가 필요없는 일’·‘선 긋기’)에서는 이내 무릎을 치게 만든다.
‘국수’나 ‘바이든 날리면’에서 보여주는 촌철살인의 기품은 여전하고 철수와 영희 이야기(시 ‘그때도 지금처럼 겸손했더라면’) 처럼 마음이 한 없이 몽글 몽글해 지는 것을 느끼게도 만든다.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의 강렬함은 물론이고 약자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는 시들은 이 시대에 시인으로서 그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고 있다. 권시인은 “어쩌다 시가 찾아오면 맞이하기야 하겠지만 책으로 묶는 일은 이제 그만하려고 한다”며 “이 시집은 권혁소라는 이름 앞에 놓였던 시인이라는 별호, 교육노동자로 살아온 40여 년에게 주는, 내게 주는 훈장인 셈”이라고 말했다.
권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이 시집이 자신의 마지막 시집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디 이 말을 사과하며, 권혁소표 시어로 써내리는 다음 시, 다음 시집을 기대해 본다. 일독을 권한다. 달아실 刊. 132쪽. 1만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