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전시리뷰]엄마라는 이름으로 빚어낸 예술과 기쁨

개나리미술관 지난 8일 ‘모든 기쁨’展 성료
경력단절 경험한 ‘마더니즘’ 여성 작가 5명
“엄마로서 삶의 굴곡을 작업으로 표현해”

[전시서문] ‘위대한 남성작가의 신화’ 속에서 여성 미술가는 오랫동안 미술사에서 거론되지 못했던 존재였다. 린다 노클린은 1971년 발간한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에서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녀는 ‘위대함’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배타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제도와 기준 위에 세워졌는지를 비판하며 “문제는 우리의 별자리나 호르몬, 생리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제도와 교육에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성 예술가들은 여전히 사회적 역할과 책임 앞에서 창작의 시간과 장소를 협상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있다.

◇춘천 개나리미술관에서 지난 8일까지 도예작가로 활동하다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작가 5인이 참여한 전시 ‘모든 기쁨’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정체성과 감정의 궤적이 화면 가득 펼쳐졌다.

춘천 개나리미술관에서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8일까지 열린 전시 ‘모든 기쁨’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전시는 도예 작가로 활동하다 경력 단절을 겪은 여성 작가 5인이 참여해 예술과 삶, 모성 사이의 균형과 회복의 여정을 조명했다. 경제적 불안정성과 출산·육아로 인한 작업 중단을 직접 경험한 작가들이 결성한 모임 ‘마더니즘’의 나정희, 박선영, 박수진, 유은혜, 진혜주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장에는 모성과 창작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고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들이 따뜻한 온기와 기쁨을 머금은 채 관객을 맞았다.

◇진혜주 作 ‘산 속의 나의 집’

작품 속 여성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까 아니면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는 걸까. 진혜주 작가의 작품 ‘산 속의 나의 집’은 출산과 육아, 창작의 간극에서 탄생한 여성의 내면을 시각화했다. 진 작가는 결혼과 출산 이후 고정된 세계가 흔들리며 변화하는 과정과 딸과의 감정을 부드러운 곡선의 산으로 시각화했다. 파스텔 색상들이 겹쳐 흐르며 인물의 실루엣을 감싸고 한쪽 무릎을 굽힌 여성의 형상과 하이힐이 교차하는 장면은 익숙했던 삶이 흔들리는 혼란의 순간과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내면의 수용, 그리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려는 회복의 의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유은혜 作 ‘Home, Salty, Sweety’

유은혜 작가의 도자작품 ‘Home, Salty, Sweety’는 울퉁불퉁한 도자기 덩어리 위에 수십 개의 곰돌이 젤리 모양 조각들을 얹어 ‘엄마’라는 정체성과 ‘작가’로서의 자아의 관계를 담아냈다. 흐르듯 녹아내린 형태는 일상 속 쌓여가는 피로와 감정을 떠올리게 하고, 그 위에 알록달록하게 장식된 젤리들은 단맛과 짠맛이 뒤섞인 고단하면서도 따뜻한 모성의 풍경을 상징한다. 흙을 빚는 작가의 손과 가족을 돌보는 엄마의 손이 겹쳐지는 이 작업은 보이지 않던 고된 노동의 가치를 유쾌하면서도 섬세하게 드러낸다.

전시장에는 따뜻함과 조용한 행복 같은 감정이 고요히 퍼져 있다. 엄마로서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 속에서, 굴곡진 삶의 여정에서 겪은 기쁨과 고통은 이들의 작업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

정현경 개나리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위대함’의 서사가 아니라 삶으로부터 차오르는 사소하지만 단단한 기쁨들에 대한 기록”이라며 “잡아두고 싶은 순간들, 고통과 행복이 교차되는 시간들, 잠시 멈춰있던 그 자리, 다시 흙을 만지며 느끼는 설렘까지 모든 기쁨은 여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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