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은 이는 떠난 이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최창순 시인의 신작 시집 ‘별이 숨은 액자’는 그런 삶의 풍경을 한 장의 사진처럼, 스톱모션으로 보여준다. 액자 속에서 별처럼 사라진 그의 아내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첫 시 ‘아내의 봄은 해진 양말 속살부터 오는 듯’ 부터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시집은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를 불러내는 동시에 자신의 상처를 쓰다듬는 시적 여정을 따라간다. 상처는 아물지 않고, 그리움은 더 짙어지며, 언어는 더 적막한 방향으로 기운다. 시인은 아내의 일상을 섬세하게 복원한다. 구멍 난 양말을 신은 모습, 냉이를 캐던 손끝, 달력의 동그라미까지…. 마치 생생한 기록처럼 되살아난 시 속 장면들은 읽는 이의 마음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아내는 떠났지만, 그녀의 자리는 남겨진 물건들로 조용히 채워지는 것이다.

‘거울 속의 눈’에서 아내가 애지중지하던 거울이 깨진 순간, 시인은 심장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겪는다. 거울 속 ‘눈웃음’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그는 매일 아침 거울을 향해 얼굴을 들이민다. 마치 그 눈을 다시 마주치기 위해 그녀의 흔적을 붙잡기 위해 살아간다는 듯. 그 거울 앞에 앉아, 그는 끝내 오지 않는 미소를 기다린다.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단연 표제시 ‘별이 숨은 액자’다. 웃는 아내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보며 시인은 “별이 그곳에 숨었다”고 말한다. 별은 밤에만 드러나지만, 액자 속 그녀는 언제나 빛난다. 살아 있음보다 선명한 부재, 그 곁엔 사라진 이의 체온을 간직한 사물들이 있다. 일상의 물건들은 슬픔을 발화하고 죽음을 견디는 또다른 언어가 된다.
시집은 시인의 개인적 슬픔을 넘어서 보편적인 상실의 풍경을 제시한다. 모든 죽음은 각자의 것이지만, 그로 인해 남겨진 이들의 상실은 유사한 궤적을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집은 누구나 한 번쯤 지나온 사랑과 이별, 그리고 남겨진 자의 하루를 고요히 비춘다. 시를 읽고 나면, 문득 냉장고에 붙은 누군가의 메모지 한 장이 떠오를 수도 있다. 아무렇지 않게 남겨진 그 짧은 문장이, 때로는 시 한 편처럼 당신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가 사랑을 전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절절한 방식일 지도 모른다. 최시인은 춘천에서 시작(詩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강원일보가 주최하는 2023 강원 시니어문학상 시부문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오감도 刊. 144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