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정연수의 ‘탄광촌 기행’]강원도 석탄산업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첨단산업+석탄문화 세계유산화’
(10·完)강원도 석탄산업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삼척 도계광업소 선탄장과 호퍼

■한국 근현대사의 압축 현장

강원도의 석탄산업은 한국 산업화의 기초 체력을 제공한 원동력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국가 주도로 대한석탄공사가 설립되었고, 도계·장성 광업소는 남한 최대 규모의 석탄 공급지로 자리 잡았다. 광부들은 ‘산업전사’라 불리며 대통령의 격려를 받았고, 매년 수백 명의 목숨을 바친 희생은 한국 산업화를 이끈 실질적 동력이었다. 서독 파견 광부 또한 삼척과 태백에서 출발해 외화 획득에 기여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가능했던 것도 바로 석탄에너지 덕분이다. 연탄은 서민 가정의 난방을 책임지며, 동시에 무분별한 벌목을 막아 오늘날의 울창한 숲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대한석탄공사 폐지 이후 도계에 단 하나의 광업소만 남은 현실은, 강원도 석탄산업유산의 보존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드러낸다. 현재 근대산업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설은 철암역두 선탄시설, 장성 이중교, 도계 급수탑뿐이며, 나머지는 방치되고 있다. 강원도의 탄광들은 식민지와 전쟁을 넘어 한국 산업화의 서사를 증명하는 실물 증거이며, 세계사적으로도 탁월한 가치를 지닌다. 석탄공사 소유물에 대해서는 일괄적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도계광업소를 국립탄광박물관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묵호항의 선탄부. 사진=대한석탄공사

■일제강점기의 기억, 그리고 도시 형성

강원도의 석탄산업은 일제강점기라는 고통스러운 기억과 맞닿아 있다. 도계·장성광업소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주민들의 현지 징용과 자원수탈 현장이었다. 여기서 생산된 석탄은 도계와 묵호 철도를 거쳐 묵호항에서 일본 고베항으로 운송되며 식민지 경제를 떠받쳤다. 따라서 이곳은 단순한 산업시설이 아니라 제국주의 수탈의 실증적 증거이다.

일본이 군함도탄광(2015)과 사도광산(2024)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면서 강제동원 사실을 은폐한 점은 큰 국제적 논란을 낳았다. 한국에서는 강제동원을 기록할 것을 요구했지만, 아직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 이에 비춰 도계광업소와 장성광업소는 제국주의의 자원 수탈과 현지 강제동원 사실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진정성을 가진다.

해방 이후 석탄산업은 삼척·태백·정선·영월지역 도시 형성의 기초가 되었으며, 1980년 동해시와 1981년 태백시의 시 승격으로 이어졌다. 정선군은 한국 최대 민영탄광이 운집한 역사성이 있고, 영월군은 강원 최초의 탄광이 개광된 상징성이 있다.

영월군은 석탄산업 유산을 대부분 잃고 2009년에야 복원형 ‘강원도 탄광문화촌’을 세웠다. 아직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도계·장성광업소는 이런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1970년대 영월광업소의 공중삭도가 철거될 때는 고철로 팔렸지만, 1990년대 도계광업소의 삭도가 철거될 때는 태백석탄박물관에 기증해 보전했다. 도계 주민이 삭도를 태백에 내어준 지 20년 지나서야 그 가치를 깨닫고 ‘삭도마을’ 만들 사례 역시 석탄산업유산의 보존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석탄을 운송하는 삭도. 사진=태백석탄박물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가치와 과제

현재 세계에는 6개의 석탄광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으며, 독일의 졸버레인과 영국의 블래나번은 성공적으로 관광자원화된 대표 사례다. 산업유산은 단순한 산업 시설의 미학적 규모를 넘어, 산업사적·문화사적 맥락 속에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일본은 ‘비서양 국가 최초의 산업화’라는 가치로 등재에 성공했으나 강제동원 기록을 누락한 점은 지금도 비판받는다. 그에 비춰볼 때, 강원도의 석탄산업 유산은 식민지 수탈, 전쟁 극복, 산업화 성취를 아우르며 역사적 진정성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다.

도계의 경동상덕광업소는 현재 운영 중에 있으며, 장성·도계광업소는 최근까지 운영되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유네스코 등재기준인 ‘완전성’과 ‘진정성’의 기준을 충족한다. 강원도의 석탄산업 유산은 △식민지와 전쟁을 극복하고 경제발전을 이룬 인류사적 성취 △탄광촌으로 상징되는 광부 공동체 문화 △도시와 산업철도망 형성이라는 종합적 가치를 증명한다.

석탄산업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은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광부들의 삶과 희생을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기억하고, 한국 산업화의 서사를 인류와 공유하는 미래지향적 선택이다. 현재 원형이 남아 있는 장성·도계광업소마저 보존하지 못한다면, 한국 산업화의 에너지 동력이 되었던 탄광도시의 정체성을 모두 잃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과제를 제안한다. 첫째 한국의 마지막 탄광인 경동상덕광업소가 폐광되는 시점에 맞추어 ‘미래에너지 세계박람회’를 삼척 도계에서 개최해야 한다. 이는 화석연료 시대의 종언과 회복력 시대를 선포하는 계기를 통해 미래에너지의 전환점을 이룰 것이다. 둘째 석탄산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도 차원의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다. ‘탄광연구 전문가+지역단체+탄광 종사자+광역 및 기초지자체’를 아우르는 협의체를 구성하여 유산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등재를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는 산업화의 희생과 성취를 인류사적 자산으로 승화시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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