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新 강원기행] <4>횡성군 둔내면 화동리 ‘화동 꽃마을’

“그냥 돌덩이가 아냐, 우리마을 수백년 지킨 거북바위라고”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 ‘화동 꽃마을’은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태기산 줄기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술이 내를 이루었다는 주천강 발원지인 화동 꽃마을은 둔내면에서 가장 고지대에 속하며 태기산 정상에 항상 떠다니는 흰구름이 장관을 이뤄 시인들로 부터 태기백운(泰岐白雲)이라 불리기도 했다.

해발 1,261m의 고봉인 태기산 기슭에 위치한 화동 꽃마을에는 수려한 계곡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화동저수지를 비롯해 인근에 보광휘닉스파크, 허브나라, 이효석 문학관, 성우리조트, 둔내 자연휴양림, 청태산 자연휴양림 등 사계절 관광지가 위치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진한의 태기왕 전설

화동 꽃마을에는 몇가지 전설이 내려온다.

우선 명칭과 관련된 전설로는 신라시조인 박혁거세에게 패한 진한의 태기왕이 이곳으로 피난을 와 태기산에 산성을 지었는데 수행한 군사와 주민들의 식량이 부족하자 화동 안 골짜기에 있던 볍씨로 농사를 짓게 된 후 부터 벼화(禾)자를 써서 화동리가 되었다고 한다.

화동 꽃마을 뒤편 태기산에는 아직도 태기왕이 신라군을 맞아 싸우기 위해 건설한 태기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목 잘린 거북이와 관련된 내용도 있다.

조선시대 진부, 봉평, 대화 등 강원 영서지역에 살고 있는 백성이 원주 문막의 남한강까지 온 소금 수송 배에서 소금을 사기위해 왕래하던 중간지점으로 주막과 소장수들의 숙소와 마방이 있었던 교통요지 였던 이 마을에는 인근에서 가장 잘 사는 부잣집이 있었다.

이 부잣집 앞에는 거북이 형상을 한 바위가 있었는데 손님 맞이에 힘들어 하던 며느리가 어느날 찾아온 고승에게 시주를 하며 “더이상 손님들이 찾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자 스님이 거북바위의 머리를 잘라냈다고 한다.

이후 부잣집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차츰 줄어들었으나 손님의 수가 줄어드는 것과 함께 부잣집의 가세도 기울어 결국 망하고 말았다.

화동 꽃마을 어귀에 위치한 거북바위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잘린 목을 간직한 채 마을을 지키고 있으며 후세들에게 “오는 손님 막지 마라”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 과거-짐꾼들의 휴식처

남한강 지류를 따라 문막까지 배가들어오던 시절 화동 꽃마을은 영서지역의 상인과 짐꾼들이 피로에 지친 몸을 쉬게 하던 최고의 휴식처였다.

상인들은 옥수수, 콩, 팥 등의 농산물을 봉평과 대화, 진부에서 구입한 뒤 지게와 달구지에 싣고 문막으로 향하다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렀으며 그로인해 주막과 같은 숙박시설이 성업을 이루었다.

김원규(78)노인회장은 “내가 어릴때 우리마을에는 평창에서 문막까지 가기 위해 지게와 달구지에 옥수수와 팥을 잔뜩 실은 짐꾼들이 마을을 많이 찾았었다”며 “우리 마을 장정들도 이들과 함께 밤을 새워 문막까지 다녀오곤 했다”고 회상했다.

또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벼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옥수수와 팥, 콩, 조, 감자, 귀리, 보리 등 잡곡농사를 짓고 주식으로 먹었다”며 “70년대에는 태기산에 거주하던 화전민들이 마을에서 터전을 가꾸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6·25전쟁 때 북한군이 처녀들을 붙잡아 간다고 해서 서둘러 마을 사는 총각과 결혼했다는 이춘자(75)할머니는 “18세에 시집을 와서 밤에는 아이들 삼베옷을 짓고 낮에는 하루종일 밭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머리에 흰머리가 앉았다”며 “그래도 지금은 콩, 팥을 머리에 이고 3시간씩 둔내장으로 가지 않아도 돼 좋다”고 했다.

1971년도 횡성으로 이사 온 고필순(72)할머니는 “서울에서 살다가 남편을 따라 구불구불한 비포장 도로를 따라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막막하기만 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이웃과 함께 오순도순 살 수 있어 서울보다 훨씬 좋다”고 자랑했다.

>> 현재-시설채소로 부농꿈 이룬다

화동 꽃마을 주민들은 인근에 위치한 사계절 관광지를 바탕으로 도시민들이 찾아와 머물며 자연과 함께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농촌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새농어촌 건설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고랭지 토마토와 무농약·저농약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는 이 마을 주민들은 비닐하우스 등을 활용해 브로콜리, 양상추, 셀러리 등 양채류를 비롯해 장미와 백합 등 화훼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주민들을 주축으로 둔내면 일대 농가들로 구성된 태기·백운 토마토 작목반은 2007년 농산물 품질관리원으로 부터 토마토, 방울토마토, 쌀, 피망, 풋고추, 양배추 등의 작목에 대해 친환경 농산물 품질인증을 받기도 했다.

화동1리 토마토 작목반 김기철(63) 전작목반장은 “지난해 양상추 등 시설채소를 재배해 300평당 1,000만원의 조수익을 얻었다”며 “장미, 백합 등의 화훼로 시작했다가 농작물 종류를 양채류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양식당 주방장으로 생활하다 귀농한 서인택(47)씨는 “21살때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97년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귀농했는데 그때 결정을 잘 한 것 같다”고 만족해 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귀농해 장미를 재배하고 있는 조성기(47)씨는 “1,300평의 시설하우스에 장미를 재배하고 있는데 고랭지 장미는 남쪽지역에서 생산되는 꽃과 달리 절화를 해도 꽃이 오래가기 때문에 인기가 좋아 1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조씨는 “지난해에는 기름값으로 5,000여만원의 비용이 들어갔는데 최근 유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등 대외적인 여건이 악화돼 걱정”이라고 근심을 털어놓았다.

24년전 시집올때 세탁기를 사왔는데 수돗물이 없어 사용을 못했었다는 에피소드를 공개한 함분숙(47)부녀회장은 “시내처럼 슈퍼마켓이 없어서 작은 물건을 사야 할때도 인근 둔내로 나가야 하는 불편과 아이들 교육문제가 있지만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면 시내 보다 오히려 살기가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화동 꽃마을 부녀회는 올해 이곳을 찾는 도시민들과 함께 메주를 쑤고 장도 담그는 체험과 판매를 하는 ‘메주방’을 만들어 농가소득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한때 600여명의 학생들이 다니던 마을내 덕성초교(현재 둔내초교 덕성분교) 유치원 교사로 왔다가 이마을 총각과 눈이 맞아(?) 결혼하게 됐다는 고경옥(여·43)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며 토마토와 브로콜리를 재배하며 사는 농촌생활이 좋다”며 “우리 마을은 다른지역에 비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 더욱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젊은 이원규(38)씨는 “2,400여평의 비가림 하우스에서 토마토와 오이고추, 피망, 파슬리 등 양채류를 재배하고 있는데 도시 직장인들 보다 수입이 좋다”며 “한때 읍내에서 장사를 하는 외도도 있었지만 결국은 시골이 좋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비가림 하우스를 시설하우스로 업종 전환해서 한철 농사가 아닌 일년 365일 농사를 짓고 싶다”며 “우리 마을이 전국 최고의 전원 휴양마을로 변신하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 미래-사계절 농촌관광지로

올해로 3년째 새농어촌건설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화동 꽃마을은 도시에서 지친 마음과 몸을 재충전 하기 위해 달려오는 사계절 농촌관광지 조성을 목표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2007년 농촌진흥청으로 부터 농촌건강 장수마을로 지정되며 받은 상사업비를 활용해 어르신 장뇌삼 재배단지를 조성하고 마을 곳곳에 건강기구를 갖춰 놓았으며 올초 65세 이상 노인 40여명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실시해 이중 암초기 진단을 받은 2명의 노인을 조기 치료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김현기(17·둔내고 1년)군은 “이농현상이 심각한 다른지역 보다는 덜하지만 또래 친구들이 적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려와 친구들도 늘어나고 교육환경도 좋아졌으면 한다”고 희망을 밝혔다.

표신영(14·둔내중1년)양은 “교통이 불편해 통학에 어려움이 있지만 맑은 자연과 예쁜 꽃들을 볼 수 있어 우리 마을이 좋다”며 “부모님이 지은 농작물이 제값을 받고 팔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직생활을 중단하고 고향에 내려온 김규성(57)이장은 “아이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 되고 어른들에게는 고향의 옛 정취를 느끼게 해 다시 찾는 고장, 장미·백합 등 꽃이 어우러지고 다양한 생태체험과 농촌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사계절 관광지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고 미래의 모습을 그렸다. 횡성=이명우기자 wo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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