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절 지키며 고려의 부흥 고대했던 그들의 망국한 담은 구슬픈 가락 정선아리랑’으로 대대로 이어져 … 지장천 따라 백이산 자락에 터잡은 31가구 순박한 인심 외지인 반갑게 맞아
정선군 남면 낙동2리(이장:전제헌) 개미들 마을은 남면소재지 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현재 31가구 83명의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나서 관광농촌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남면의 젖줄인 지장천을 따라 백이산 자락에 마을을 형성,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낙동리는 예부터 정선아리랑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고려 충신 칠현의 충절이 남아 있는 고장이다.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 한림학사 집현전 대제학을 역임한 전오륜(全五倫)은 고려가 망하자 김중한(金仲漢), 고천우(高天佑), 이수생(李遂生), 신안(申晏), 변귀수(邊貴遂), 김위(金瑋) 등과 함께 정선 낙동리 거칠현동 백이산으로 피신했다.
그들은 충절을 지키며 고려의 부흥을 고대했다.
그러나 한 번 바뀐 역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의 망국한을 담은 구슬픈 가락은 정선 곳곳으로 퍼져나가 정선아리랑 가락으로 변해 대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 노아의 방주 백이산
개미들 마을을 둘러보면 왜 중국의 유명한 관광지인 계림과 비교를 하는지 쉽게 알수 있다.
백이산은 두위봉(1,466m)에서 뻗어나온 능선이 죽령산(1,059m)을 거쳐 곰봉(1,105m)에 이르고 곰봉에서 북동쪽으로 난 능선이 동남천에 막혀 솟아오른 산이다.
옛날에 큰 홍수가 나서 천지가 물에 잠겼는데 산의 꼭대기가 감투만큼 물 위로 보였다고 해서 감투봉이라고도 불렸다.
홍수가 났을 때 산 위에 배가 걸려 있었다고 해서 배이산이라고 불렀다가 와전돼 백이산이 되었다는 ‘노아의 방주’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백이산이 정선의 관광방주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낙동2리 마을 앞에 우뚝 솟은 ‘천마산’도 마을의 자랑.
산세가 마치 하늘로 오르는 용마의 기상을 닮아 많은 전설을 품고 있다.
또 일사병을 고친다는 관음굴과 청정계곡인 문두계곡, 전설을 간직한 학바위 등이 있다.
>> 과거- 세월과 담을 쌓은 은둔의 마을
지장천의 맑은 물을 따라가며 백이산 자락에 터를 잡은 낙동2리는 충신들의 은둔지답게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높이가 100여m는 됨직한 기암괴석이 하천을 따라 군락을 이루며 솟아오른 채 외지인들을 반갑게 맞는다.
낙동2리는 개미들 마을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광해군 말기에 한림학자 신일민(辛逸民)은 관직을 사임하고 낙동리에 은거하던 중 나무 그늘에 개미가 모여들어 이곳저곳 어디에도 앉을 수 없게되자 ‘개미들 판’이라 한 것이 지금까지 개미들 마을로 불리고 있다.
개미들마을은 남에서 북으로 흘러온 동남천이 동에서 서로 꺾여 굽이굽이 휘돌아 흐르면서 물길 양쪽으로 농경지가 형성돼 있고 양전옥토(良田沃土)가 많아 농산물의 질이 으뜸이다.
그러나 불과 1980년대만 해도 마을로 통하는 길이 외나무 다리밖에 없어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현재도 개미들 마을로 가는 버스는 아침 저녁 두차례만 운행된다.
전영희(55)씨는 “외나무다리를 건너 시집올 때만 해도 육지에서 제주도로 가는 심정이었다”며 “워낙 오지여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까 하는 생각에 막막하기만 했다”고 했다.
최종갑(75)씨는 “옛날에는 하루하루 먹을거리를 걱정할 만큼 자급자족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며 “교통이 워낙 불편해 정선 5일장에 가려면 쇄재 문두재 등을 넘고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야 해 왕복에만 하루종일이 걸렸다”고 웃었다.
>> 현재- 산촌관광마을로 비상
개미들 마을은 정선에서 도시민 대상 축제를 가장 많이 하는 마을로 유명하다.
오는 18일에는 올해로 6회째 백이산 산나물축제를 개최한다.
이 행사에는 1,500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산 높고 골 깊은 백이산 일대에서 고사리, 두릅, 취나물 등 봄나물을 채취한데 이어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빚은 전통술도 맛 보며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또한 찰옥수수 축제 백이산등반대회 마을 특산물 이벤트 행사 등이 연중 실시된다.
이에 따라 지낸해에만 5,000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 2억원 이상의 마을 소득을 올렸다.
마을 홈페이지를 구축, 신기술관련교육과 농업정보화교육 등 신지식농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고추, 더덕, 찰옥수수 등의 특화작목과 가공식품인 전통메주를 개발해 도시민들과 직거래를 하고 있다.
또한 민박시설과 산책로, 쉼터, 낚시터 등의 농촌관광 기반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도시학교 초청 농사체험, 토속음식 시연회, 음악축제 등 다양한 농촌관광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옛 농경문화의 향수를 관광객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농경박물관을 설립했으며 물레방아 오지트레킹 숲길걷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병행하고 있다.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마을 자체적으로 사물놀이패를 운영하고 있다.
사물놀이패를 2002년 결성해 운영중인 오선암 최승각(45)스님은 “마을 풍물단이 전통문화를 외지에 알리고 주민화합을 다지는데도 그만인 것 같다”고 했다.
최스님도 5년째 사찰 주변 야산을 개간 약초와 산나물을 직접 재배하고 있다.
조정희부녀회장(47)은 “사람이 많이 찾아와 힘들기는 하지만 열심히 일한 만큼 좋은 결실로 이어져 너무 좋다”며 “마을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고 있다”고 했다.
개미들마을은 2004년 도 새농촌우수마을, 2006년 행자부 녹색체험마을, 2008년 군 로하스농촌관광타운 시범마을로 각각 선정돼 상사업비만 12억원을 받았다.
또 상사업비를 바탕으로 관광소득 증대를 위해 향토민박집 4동을 완공했다.
이런 성과등에 힘입어 개미마을 주민들의 가구당 평균 소득은 연간 3,000만원을 넘어섰다.
처음 새농촌건설운동을 추진할 당시만 해도 이런 기적같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그러나 신문 방송 등에 지속적으로 수십차례에 걸쳐 홍보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 결과 정선을 가장 대표하는 산촌 테마마을로 거듭났다.
>> 미래- 도시민들의 청정쉼터
개미들마을은 50대미만 젊은 층이 50%에 달할 정도로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적다.
특히 귀농자도 많아 마을의 미래를 밝게하고 있다.
2,3년간 귀농자만 8명에 달한다.
충북괴산이 고향인 정지호(41)씨는 수영강사를 하다 5년전 귀농했다.
정씨는 “피서를 왔다 주민들의 순박한 인심과 주변 경치에 감탄해 눌러앉았다”며 “농사를 짓는 방법을 전혀 몰랐지만 귀농 5년만에 주변의 도움으로 고추 옥수수 감자 등을 심어 2007년에만 5,0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고 했다.
전제헌이장은 “개미들마을은 경작지가 적어 주민들의 의식전환이 필요했다”며 “현재는 많은 귀농으로 마을발전을 젊은 층이 주도하고 있어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고 했다.
개미들마을은 종합농촌관광타운을 건립하는 것이 목표이다.
주말농장 형태로 운영될 로하스관광타운은 올해 민박5동을 건립하는 등 2011년까지 총20동을 지을 계획이다.
또 민박과 함께 과수농장 산채 약초농장 등을 조성, 일반에게 주말농장으로 분양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개미들마을의 미래를 연 인물로 최법순(49) 김희애(44)부부의 헌신적인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낙동리가 고향인 최씨는 경기도에서 10년간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2001년 귀농했다.
최씨는 녹색농촌체험마을 추진위원장을 맡아 개미들마을의 농촌문화 의식계몽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최위원장은 “마을주민 모두가 새로운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신지식농업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관광상품 1호인 주민들의 후덕한 인심을 바탕으로 친환경농업실천, 주거환경 및 문화복지시설 개선 등 마을발전을 위한 사업을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다. 정선=김광희기자 khkim@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