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新 강원기행]<5>평창군 대관령면 병내리

꼬불꼬불 고개 끼고 수려한 계곡 넘치니 ‘병풍’이 따로없네

‘비안마을’또는 ‘병풍골’로 불리는 평창군 대관령면 병내리는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전형적인 산촌이다.

국립공원 오대산과 불교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월정사 입구에 위치한 비안마을은 서쪽으로 오대천이 흐르고, 젖띠기골·박곤네골 등 작은 고개들과 안개자니 계곡 등 수려한 계곡을 끼고 있다. 자연마을은 개자니, 속새골, 진고개가 있는데 개자니는 ‘지형이 개가 잠을 자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속새골은 ‘속새풀이 많았다’고 생긴 이름이다.

진고개는 ‘진고개라는 고개 밑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특히 15분 거리에 대관령 양떼목장과 용평리조트 등이 있고, 한국자생식물원이 마을 내에 위치하고 있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사계절 관광지로 인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 문수보살의 전설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오대산 월정사가 인접한 비안마을인 만큼 문수 신앙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고 주민들은 전한다.

신라시대 때 동짓날을 맞아 월정사에서 팥죽 제사를 지내야 했는데 현재의 병내리 북쪽에 위치해 있던 양짓마을에 한 명의 동자승이 불씨가 꺼졌다며 민가에서 불씨를 얻어갔다고 한다.

동짓날 예불을 위해 월정사를 찾은 주민들이 보니 그 동자승의 모습이 문수보살상의 모습과 똑같았고, 문수보살상의 입에는 팥죽이 묻어 있었다고 한다.

또 지명과 관련해서는 비안마을과 소금강을 잇는 노인봉에 대한 전설도 전해온다.

옛날 심마니가 주로 이 산에 산삼을 캐러 왔다가 선잠이 들었는데 꿈에 노인이 나타나 이 부근에 무밭이 있으니 거기 가서 무를 캐라고 하고 사라졌다.

심마니가 깨어 보니 꿈이 하도 이상해 노인이 가르쳐 준 곳을 가보니 산삼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꿈에 머리가 흰 노인이 나타나 산삼밭을 알려줬다고 해 ‘노인봉’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 과거- 가난의 恨과 나눔의 情이 있는 곳

진고개와 대관령으로 이어지는 심심산골이다 보니 비안마을은 예부터 감자나 옥수수, 잡곡에만 의존하는 전형적인 오지마을일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인구가 광복 이전까진 현재보다 10배나 많은 700∼800여명에 이르렀다.

마을을 통과해 다른 곳으로 이를 수 있는 길도 단 한 개의 길 밖에 없었고, 가을에 수확한 콩이나 팥을 지게에 짊어지고 시장에 내다 팔아도 돈이 아닌 물물교환의 형식으로 생필품을 받아 올 정도였다.

비안마을 최고 어른인 이원구(76)씨는 “기껏해야 감자나 심어 주식으로 삼고, 콩·팥 등을 팔아 필요한 것으로 바꿔 쓰는 게 다였어.

일제치하 지나고 6·25 전쟁이 나니 그나마 2개 리였던 마을 중 한개 리가 없어졌지”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실제 광복 이후 38선을 경계로 국토가 분단된 뒤 북쪽에 인접했던 오대산에는 북한의 도발이 매우 심했다.

1949년 7월1일 태백산맥을 이용해 무장공비 100여명이 남파했을 때는 평창경찰서 경찰들과 대규모 전투도 있었다고 한다.

평창경찰서는 무장공비 50명을 사살하고 12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고 그 와중에 9명이 죽고 4명이 부상 당하는 아픔을 겪었고 4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병내리 진고개 일원에 높이 13m의 경찰 전적비가 세워졌다.

박태용(68) 노인회장은 “내가 어릴 때는 짚으로 엮은 초가집이 대부분이었고 가난한 마을에 비료가 없어 항상 곡식이 모자랐다”며 “퇴비를 할 때는 최대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집 앞에 산더미 같은 풀을 쌓아 놓아 보여주는 내기를 할 정도였어.

그래도 가난은 했지만 가을이면 모두 모여 나무를 하는 울력을 하고 농사철엔 품앗이를 하는 정(情)도 깊은 마을이었지”라고 회상했다.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크로스컨트리 종목 은메달리스트이자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박기호감독의 모친인 김승옥(74)할머니는 “아들이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해 이장님이 애들을 키워주기도 했다”며 “인심 좋고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정 때문에 우리 아들이 대학까지 갈 수 있었어”라고 했다.

>> 현재- 청정 자연이 숨 쉬는 농촌 조성

37가구 70여명이 살고 있는 비안마을은 1970년대 중반 농촌진흥청에서 카네이션을 최초로 시험재배하는 등 고랭지 화훼의 시발점이 된 지역이다.

또 지역 내에 한국 자생식물원이 위치해 있어 꽃과 관련된 많은 행사와 농촌관광 프로그램도 개발돼 있다.

한국 자생식물원과 연계한 ‘우리 꽃 축제 및 사진 압화전’, ‘봉숭아꽃 물들이기’, ‘도라지꽃 축제’등 마을 자체적으로 우리 꽃과 우리 약초 체험공원을 조성할 정도이다.

특히 3년여 전부터는 새농어촌건설운동에 주력하며 농촌관광 체험마을로 거듭나기 위해 전 주민이 하나 된 단결력을 발휘하고 있다.

비안마을은 관광객들에게 봄에는 양채류 및 쌈채류 정식의 먹을거리와 산나물 뜯기 등의 체험행사를 제공하고, 여름에는 민물고기 잡이, 감자 캐기 등을 즐길 거리로 내놓고 있다.

가을에는 도라지와 더덕 캐기, 도라지 엑기스 체험, 겨울에는 전통 눈 놀이기구 체험 등 4계절 관광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춘수(46)이장은 “지난해에는 33㎡ 정도의 통나무 펜션 4개 동과 150㎡ 면적의 농촌관광체험관도 건축했다”며 “전원 관광을 즐길 다양한 농촌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획일적인 농사에서 벗어나 생각을 바꾸는 다양한 교육도 펼치고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비안마을은 부촌으로 거듭나기 위해 마을 주 작목으로 파프리카 시설재배도 더욱 확대중이다.

학교 졸업 후 농사에만 매달렸다는 고연재(50)씨는 “87년부터 고랭지 화훼재배로 재미를 좀 봤지만 시설투자비 등이 많아 파프리카로 전환했다”며 “1,400평의 파프리카 재배로 평당 10만 원씩의 안정적인 조수익을 얻고 있다”고 했다.

김문희(56) 부녀회장은 “당근과 브로콜리,연간귀 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해 친환경 비누를 만들어 판매해 연간 비누판매 수입만 2,300여만 원에 이른다”며 “부녀회가 친환경운동을 벌여 청정 환경 조성에 앞장서고 마을을 청정 농촌관광지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79년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5년 전 고향으로 귀농을 한 김지수(56)씨는 “세대 수가 줄고 외지인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마을 발전을 위해 모두가 단합하고 있다”며 “국립공원 구역으로 인해 많은 제한이 있지만 오히려 청정 자연을 마을 발전의 모토로 삼고 있다”고 했다.



>> 미래- 전국 최대 전원마을을 꿈꾼다

농림부와 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가 추진한 2006 전원마을 페스티벌에 당선된 비안마을은 총 사업비 1,540억 원이 투자돼 모두 800여 가구의 단독주택과 빌라형, 아파트형 전원마을이 조성될 예정이다.

은퇴한 도시민들이 시골 농촌마을에 조성된 미래형 전원생활 공간에서 제2의 인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기반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비안마을 주민들은 미래의 전원마을 조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마을 주민들의 의식개혁과 함께 살기 좋은 농촌 조성을 위한 새농어촌건설운동에 더욱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4년째 파프리카를 재배하고 있다는 한준섭(28)씨는 “지역의 명소인 한국자생식물원과 함께 관광 체험마을, 전원마을이 잘 조성돼 마을 발전의 초석이 되었으면 한다”며 “선대의 가난을 벗고 부촌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고 했다.

펜션을 운영중인 김영석(33)씨는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도시민들을 하나의 손님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가족으로 맞이하는 진정한 농촌체험마을로 발전시키는데 노력할 것”이라며 “아이들도 많아져 마을에 아기 울음 소리가 넘치는 행복한 마을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마을의 유일한 학생인 김지유(여·12)·용유(10)남매는 “수해로 길이 험해 공사를 많이 해 학교 다니는데 불편한 만큼 하루빨리 정비가 됐으면 좋겠다”며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시설과 도서관, 극장 등 문화시설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고 바랐다.

김춘수(46)이장은 “청정한 자연경관과 전통문화, 역사 유산을 체험할 수 있는 농촌체험관광지로 조성하겠다”며 “도시민에게 휴식과 휴양, 새로운 체험을 제공하면서도 산간 마을 특유의 소박함이 살아 있는 마을로 가꿔갈 것”이라고 미래를 그렸다.

평창=김영석기자 stone@kwnews.co.kr

사진=최유진기자 strongman55@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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