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효령대군, 그는 왜 세조의 불교적 신화 만들기에 나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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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의궤 톺아보기]세조의 강원도 순행(巡幸)④
관세음보살 친견, 표훈사 상서로운 현상 불교적 신화 창조

◇효령대군 영정. 경기도 유형문화재

세조의 순행 행렬(실록에서는 대가(大駕·임금이 타는 수레)로도 표현)은 금강산에 이르러 장안사와 정양사, 표훈사를 차례로 참배한 후, 회양(1466년 3월22일)과 통천(24일)을 거쳐 고성 온정(溫井·온천)의 행궁(왕이 도성 밖에서 머무는 임시 별궁)에 도착한다(세조실록 38권, 세조 12년 3월 25일). 예조참판 강희맹이 세조의 금강산 거둥(擧動·임금의 나들이)으로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났다는 ‘금강산서기송(金剛山瑞氣頌·③편 참고)’을 올린데 이어, 효령대군 이보(李𥙷·1396~1486)도 세조의 신격화에 힘을 보탠다. 세조가 금강산을 떠나면서 효령대군을 시켜 표훈사에서 수륙회(水陸會)를 베풀게 했는데, 그 때 상운(祥雲·상서로운 구름), 서기(瑞氣·상서로운 기운), 우화(雨花·꽃비)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 것 이다(세조실록 38권, 세조 12년 3월 29일). 이정주 단국대 교수는 ‘세조 후반기 순행과 불교’ 논문에서 세조의 신격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효령대군을 꼽고 있다. 관세음보살이 나타난 상원사(경기도 양평)가 바로 효령대군의 원찰이었다. 강원도 순행 4년 전인 1462년, 효령대군은 상원사로 세조를 인도한 뒤, ‘관세음보살 친견(세조실록 29권, 세조 8년 11월 5일)’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최항(1409~1474)이 쓴 ‘관음현상기(觀音現相記)’에도 세조가 상원사에서 유숙하던 밤에 관음보살이 나타나면서 상서로운 빛이 비치고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다가 한참 만에 흩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이 책에는 관세음보살이 나타난 장면이 그림으로도 기록돼 있는데,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에도 이를 모티브로 한 장면들이 여러번 등장한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때 마다 세조는 죄인을 사면하고 백성 구휼에 나서는 등 민심을 얻기 위한 조치들을 발빠르게 취했다. 세조는 표훈사 수륙회 때 상서로운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튿날 전교를 내려 사유(赦宥·조선시대 왕이 사령을 내려 죄인을 특사하는 제도)와 함께 5년 이상 곡식 미수는 전부, 3·4년은 절반을 면제하게 했다. 특히 강원도의 경우는 특별대우를 한다. 강원도에 한해 곡식 미수는 빌린 연차와 상관없이 전부 면제 시켰고, 해마다 바치는 세공군기(歲貢軍器·군용물품)와 신세포(神稅布), 전세(田稅) 등 각종 세금을 전부 또는 절반 면제하게 했다(세조실록 38권, 세조 12년 3월 30일). 이처럼 백성들에게 일종의 혜택을 주게 된 것은 세조의 불교적 신화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 이외에도 임금의 순행에 대한 백성들의 안좋은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로도 보인다.


■미니해설

효령대군=조선 제3대 왕인 태종의 로 아버지 태종을 시작으로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 모두 7명의 임금을 거치면서 91세까지 장수했다. 형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폐위되고 난 후, 동생 충녕대군(세종대왕)이 세자로 책봉되자 불교에 심취하게 되는 인물이다. 세조 10년(1464년)에 원각사가 창건되자 조성도감 제조가 돼 직접 감독하는 등 여러 불사를 주관했다. 원각경 등 여러 불경을 번역해 간행하는 일에도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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