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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만세운동 중심 화천 시가지에 태극기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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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 제104주년 3·1절 앞두고 곳곳에 태극기 게양
만세시위·국채보상·항일의병 거셌던 애국·충절의 고장

◇제104주년 3·1절을 앞둔 25일 화천군 화천읍 중앙로 시가지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화천】 도내 3·1 만세운동의 중심지인 화천 곳곳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화천군은 제104주년 3·1절을 앞두고 최근 주요 시가지마다 태극기를 게양해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화천은 조선 후기 항일의병·독립운동의 격전지로 역사무대에 소개된다. 의병운동에서부터 일제에의 항거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의 넋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애국의 고장, 충절의 고장이다. 올해 정군(定郡) 121주년을 맞아 민족·항일운동 재조명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항일 구국운동의 성지로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제104주년 3·1절을 앞둔 25일 애국·충절의 고장 화천 시가지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화천=장기영기자

■1919년 만세시위=1919년 화천의 만세시위는 두 차례 5개 장소에서 벌어졌다. 3월23일은 천도교인이, 3월28일은 유학자, 청년, 농민, 의병 출신이 주동했다. 군중은 일본 헌병에게 무력을 가하고 일제 관청을 공격, 기물을 부수며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모두 3,500명 이상의 군민들이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들불처럼 일어났으며 당시 일제에 검거된 사람이 도내에서 가장 많은 175명이며 투옥된 사람은 16명일 정도로 화천지역의 만세운동은 치열하게 전개됐다.

■국채보상운동=1907년 화천의 국채보상운동은 부인회가 주도했다. 일제의 경제적 예속정책에 대항해 국채를 상환하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전개됐다. 1907년 3월부터 1909년 9월까지 2,542명의 주민이 참여했고 부인회 등 단체를 포함하면 모두 2,700여명이 힘을 모았다. 모금액은 신화 816환65전, 구화 156원30전. 작은 지역으로 화전민의 비율이 높았지만 도내에서 최고의 참여도를 자랑한다. 여성이 주체가 돼 조직적으로 모금한 곳도 화천이 유일하다

◇항일 의병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화천읍 아5리 전장골. 마을입구에 '전장골'이라고 표시돼 있다. 화천=장기영기자

■항일의병운동=항일의병운동에서 화천은 의병이 지나는 통과지역 또는 전투지역으로 중요한 지리적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서상열·지용기 의병장이 화천 일대에서 국권침탈에 저항하며 일제와 맞서 싸우다 전사한 기록이 나온다. 화천읍 아5리 마을 입구에 설치된 '전장골' 표지석이 당시 일제에 항거해 일어났던 치열한 전투를 증언해 준다.

◇항일 의병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화천읍 아5리 전장골. 마을입구에 자연부락명인 '전장골' 표지석이 설치됐다. 화천=장기영기자

최문순 군수는 “선조들이 보여준 독립·구국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나라사랑 정신이 지금도 화천인의 가슴에 생생히 살아 있다”며 “3·1절 104주년을 맞아 게양된 태극기를 보며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겼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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