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메트로폴리탄 뉴욕]못다한 이야기17.다이버시티 뉴욕의 두 뿌리, 아프리칸 어메리칸과 유대인

뉴요커 10명중 6명은 최소한 부모 한쪽 외국인
아프리칸 어메리칸 커뮤니티 '할렘'으로 대변
유대인 커뮤니티…브루클린, 퀸즈 등 도처에

뉴요커 10명중 6명은 최소한 부모 한쪽이 외국인이라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뉴욕이 다인종, 다민족, 다국적 사회라는 이야기인데, 이러한 다양성이야말로 뉴욕을 미국의 대도시 가운데 하나로 보면서도 한편으론 미국과는 또 다른 매우 독특한, 이질적인 도시로 바라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뉴욕을 이루는 다양한 커뮤니티 가운데 최근 히스패닉이나 아시아계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전통적인 외국인 그룹의 주류는 역시 아프리칸 어메리칸(African American)과 유대인(Jews) 커뮤니티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에 이 두 그룹이 어떻게 뉴욕에 정착하여 어떤 경로로 세를 불려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지금의 뉴욕을 이해하는 좋은 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번 그 다양성의 기원을 따라가 보기로 하자.

먼저 아프리칸 어메리칸 커뮤니티다. 이들 그룹을 지역으로 표현하면 한마디, ‘할렘(Harlem)’으로 대변된다. 지금은 흑인 거주지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할렘이지만 19세기 한때는 백인 귀족들이 모여 사는 고급 거주지였다. 맨해튼 할렘이 흑인들의 밀집 거주지로 부상한 배경에는 주류 세력인 백인 커뮤니티의 차별적 탄압과 폭동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할렘은 이렇게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흑인들의 피동적 집단 이주의 결과물이었다. 맨해튼 내 최초의 흑인 거주지는 원래 다운타운 지역이었다. 다른 외국 이민들과 마찬가지로 흑인들도 선박들이 닿기 쉬운 맨해튼 남동쪽, 지금의 로어 이스트(lower east) 지역에서 거주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 등을 찾아 자연스럽게 맨해튼 북쪽으로 이주했던 다른 이주민들과는 달리 흑인들은 백인 또는 먼저 자리 잡은 외국인들에 쫓겨 어쩔 수 없이 북상했다는 점이 달랐다. 당시 뉴욕에 몰렸던 흑인들은 대부분 버지니아나 캐롤라이나, 즉 노예제의 흔적이 뚜렷했던 남부로부터 자유를 찾아 흘러들어온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거주기반이 없는 최하층 거주민인 경우가 많았다.

주류 백인들의 몰아내기식 탄압에 못 이겨 점차 북상하게 된 이들 절대적 약자, 흑인들은 처음에는 지금의 미드타운 지역에 둥지를 튼다. 최초의 대규모 흑인주거구역으로 유명해진 곳은 소위 ‘블랙 보헤미아(Black Bohemia)’라고 불렸던 미드타운 53번 스트리트 서쪽이었다. 이 지역은 당시 뮤지컬과 쇼비즈니스가 성행하던 유흥구역이었는데 선천적으로 리듬과 춤, 음악적 역량이 뛰어난 흑인들이 무대를 장악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흑인 밀집 거주지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맨해튼 서쪽 지역을 장악했던 아이리쉬(Irish) 이민들이 흑인들의 이주에 집단 반발하면서 양자간 갈등이 극에 달하는데, 급기야 1900년 8월에는 이들간 반목이 폭발하며 인종폭동이 일어난다. 결국 두 그룹중 하나, 즉 늦게 들어온 흑인들이 쫓겨나게 되었고, 이렇게 밀려난 흑인들이 새로이 둥지를 튼 곳이 센트럴파크 북쪽, 지금의 할렘지역이다.

1930년대 할렘, 빌리 홀리데이 공연 모습 (자료: The Historical Atlas of New York City)
1920년대 할렘, 루이 암스트롱 공연 모습. 뒷줄 트럼펫 연주자(자료: The Historical Atlas of New York City)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한 가지 있다. 그렇게 쫓기고 밀리던 흑인들이 어떻게 할렘지역에선 무리 없이 정착할 수 있었을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할렘은 백인들의 고급 거주지이기도 했다는데, 어떻게 흑인들이 이곳에서 세를 불리며 안전하게 자리잡은 것일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처음엔 할렘에서도 흑인 배척이 심했다. 그런데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대 반전(反轉)이 일어난다. 당시 처음 발명되어 노선이 막 팽창하기 시작했던 철도가 이 지역에 들어서면서 철로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고 마침내 한 철도회사(Pennsylvania Railroad Company)가 이 지역을 매입하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없던 흑인 거주민들은 갑자기 거금(당시 5십만달러 상당)을 손에 넣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임대아파트가 들어서고 일자리가 늘어나며 흑인인구도 빠르게 팽창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들의 소득수준도 급격히 높아진다. 할렘의 흑인인구는 1900년대 들어 급증하여 1930년대엔 이미 흑인들이 할렘지역을 대부분 장악하게 된다. 아울러 1909년엔 유색인종을 위한 전국연합(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이 창설되는 등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따라서 확대된다.

당시 할렘의 인구, 경제, 정치적 팽창 외에 눈여겨봐야 할 또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그건 바로 예술적 분야에서의 흑인 커뮤니티의 눈부신 활약이다. 당시 첫선을 보인 재즈(Jazz)라는 음악 장르의 기원은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 지방이었다. 그러나 정작 재즈가 가장 번성했던 곳은 뉴욕이었다. 특히 당시 흑인 거주지로 급팽창하던 할렘이 재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는데, 소위 재즈의 황금기라 불리는 20세기 초반, 전설적인 뮤지션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1915~1959),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1901~1971),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1899~1974) 등이 이 당시 할렘에서 무대를 누빈 재즈 아티스트들이다. 당시 할렘 재즈의 중심무대는 코튼클럽(Cotton Club)이라는 바(Bar)였는데, 주로 백인 관람객들이 흑인 아티스트들의 재즈 공연을 즐겼다. 재즈의 공급자는 흑인이었지만 수요자는 백인이었던 셈인데, 그렇다면 재즈는 누구의 음악일까? 답을 내리기가 만만치 않은 주제이기도 하다.

1900년 맨해튼 로어이스트 지역(헤스터 스트리트) 모습 (자료: The Historical Atlas of New York City)

다음은 뉴욕에 거주하는 유대인(Jews) 커뮤니티의 기원을 살펴보자. 지금은 브루클린, 퀸즈 등 뉴욕 도처에 유대인들이 흩어져 생활하지만, 19세기 최초의 커뮤니티는 역시 다운타운 로어 이스트 지역이었다. 1880년부터 1920년 사이에 약 2백만명의 유대인들이 러시아, 폴란드, 오스트리아-헝가리, 발칸반도 등지로부터 유입되었다고 하는데 대부분 맨해튼의 관문이랄 수 있는 로어 이스트 지역, 헤스터 스트리트(Hester Street) 부근에 정착해 살았다. 이들은 대부분 허름한 단층 임대주택에 모여 살았는데 이민으로 소득이 적은 데다 워낙 좁은 지역에 많은 인구가 모여 살다 보니 생활형편이나 위생수준 등이 형편없이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커뮤니티는 깊은 신앙과 교육열, 끈끈한 단합력 등 다른 이민들과 차별화되는 그들만의 장점을 기반으로 점점 그 세를 불려나간다. 특히 유대인 특유의 상업정신으로 레스토랑, 카페, 부동산, 의류 등 다양한 업종으로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경제적 생활수준도 점점 향상되었는데, 미국사회에 동화(同化)되려는 이들 커뮤니티의 열망도 따라서 높아져 간다. 미국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경제력은 물론 교육, 영어 등 자질 향상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낮에는 상업활동에 종사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생활패턴이 커뮤니티내에 확산되었다. 결국 로어 이스트 지역의 주택 개혁, 공공의료 및 교육시설 확충 등이 이어지면서 이들의 미국시민층 편입은 빠르면서도 조용하게,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1930년 할렘 인구분포(보라색이 아프리칸 어메리칸 거주) (자료: The Historical Atlas of New York City)

아프리칸 어메리칸과 유대인, 이 두 커뮤니티는 워낙 기원이 오래된 탓도 있지만 외국인이라고 표현하는 게 어색할 만큼 이미 오래전에 미국화에 성공한 이민그룹이다. 1, 2차대전을 겪으며 일찍이 대거 유입되었던 아이리쉬나 독일계, 이탈리아계 등 유럽 이민들과 비슷하다. 그냥 뉴요커로 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들에 비해 비교적 뒤늦게 미국사회에 편입한 히스패닉이나 아시아계와는 주류계층과의 갈등의 역사나 부침, 사회 기여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세대가 계속 이어지면서 미국시민으로서의 권리나 의무에 대한 자각이 높아져 상당부분 주류에 편입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그래도 뉴욕에 살다 보면 이들 거대 이주민 커뮤니티가 여전히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피상적으로만 보아도 할렘은 역시 흑인들이 절대다수인 흑인 천국이며, 로어 이스트 또는 브루클린 쪽 유대인 커뮤니티는 검은 정장에 길게 늘어뜨린 머리, 독특한 모자로 복장이 통일된 유대인들이 길을 걷는 모습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미국시민이지만 자신들만의 뿌리는 잃지 않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지금의 뉴욕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전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다이버시티 뉴욕의 특색이다.

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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