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보=3급 군사비밀인 암구호(아군과 적군 식별을 위해 정해 놓은 말)를 민간인에게 공유한 사실이 알려져 검찰과 경찰, 군 수사기관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암구호가 다양한 이유와 경로로 유출된 사건들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이 국방부를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2021년∼2024년 6월 암구호 유출과 관련해 군검찰이 기소하고 군사법원에서 판결이 나온 사건은 총 4건이다.
A 상병은 암구호 유출에 따른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1월 군사법원에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운전병으로 근무하던 A 상병은 2022년 10월 선임병으로부터 암구호 질문을 받았으나 제대로 답하지 못해 혼이 나자 여자친구와의 카카오톡 대화방에 암구호를 기록해두면 빨리 확인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총 18회에 걸쳐 암구호를 여자친구와의 대화방에 적어두는 방법으로 암구호를 누설했다.
재판부는 A 상병의 죄책이 무겁다면서도 누설된 암구호가 제삼자에게 전파된 사정을 찾아보기 어렵고 현실적인 국가안보상 위협이 발생하지는 않았다는 점 등을 참작해 양형했다.
전화 상대방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고 암구호를 말한 사례들도 확인됐다.
부대 내 암구호 전파 업무를 담당하던 B 상병은 지난해 8월 자신의 휴대전화로 걸려 온 통화에서 자신을 '소대장'이라고만 소개한 상대에게 암구호를 알려줬다가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C 하사도 2022년 2월 상황 근무 중 주민신고용 전화로 걸려 온 전화 상대방이 암구호를 묻자 불시 점검으로 여기고는 암구호를 말했다. 그는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올봄 군 정보수사기관인 국군 방첩사령부가 처음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군방첩사령부와 민간 검찰·경찰은 군 장교가 사채업자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신원 확인을 위해 암구호를 알려준 사실을 파악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수사 과정에서 대상자가 늘어나고 있다.
수사의 시발점이 된 D 대위는 지난 6월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항소하지 않으면서 형이 확정돼 현재 전역 조처됐다.
그는 암호화폐 투자에 실패해 채무에 시달리던 중 사채업자로부터 암구호를 제공하면 대출이 가능하다는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거부했다가 곧 마음을 바꿔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D 대위는 올해 1월 상황실의 암구호 판에 나온 암구호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뒤 사진 파일을 사채업자에게 보내주는 식으로 2회에 걸쳐 총 100만 원을 빌린 것으로 조사됐다.
군사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은 장교로 10여년 간 근무한 사람으로 군사기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군사기밀 내용을 촬영해 전송했다"며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보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D 대위는 범행 후 상관에게 이 사실을 직접 털어놨고, 방첩사는 그를 수사하면서 민간인 사채업자에 대한 혐의를 민간 수사기관에 이첩했으며 해당 사채업자에게 암구호를 알려준 현역 군인들을 더 포착해 추가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사채업자들이 군인들에게 얻은 암구호를 이용해 군부대에 출입한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국방보안업무훈령에 따라 3급 비밀로 규정된 암구호는 단어 형식으로 매일 변경되고, 전화로도 전파할 수 없다.
유출되면 즉시 폐기되고 암구호를 새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보안성이 강조된다. 초병이 '문어'(問語)를 말하면 대상자는 '답어'(答語)를 외치는 방식으로 피아 식별을 한다. 통상 보초는 문어와 답어가 맞으면 경계를 풀고 문을 열어준다.
한국전쟁 당시 야간에도 국군과 인민군을 식별하기 위해 지금은 세간에도 잘 알려진 '화랑'(문어), '담배'(답어) 등의 암구호를 쓴 게 대표적이다.
흔히 군대에서 "탄피는 못 찾아도 암호문인 CEOI(통신전자운용지시)는 잃어버리면 안 된다"라는 말을 하는데, 암구호는 바로 이 CEOI를 통한 암호화를 거쳐 각 군에 전파된다.
선임병들이 갓 입대해 경계 근무가 익숙하지 않은 초병들에게 '상대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암구호를 발설하지 말라'고 철저히 교육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일괄적으로 전파했기 때문에 암구호가 한 곳만 유출돼도 모든 군부대가 다 뚫릴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현재는 부대별로 정하는 곳도 있어서 이러한 문제는 해소된 것으로 알려진다.
한 육군 간부는 "암구호는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3급 비밀 이상의 중요도가 있다"며 "누군가 암구호를 고의로 유출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또다른 군 관계자는 "암구호 유출은 군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중대한 일이라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 사정당국과 검찰은 조만간 사건 수사를 마무리하고 관련자 처분과 기소 여부 등을 정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