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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삼척 대형 산불-르포]화마에 집 잃은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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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발생한 산불이 밤에도 꺼지지 않아 발생 이틀째인 7일 홍제동 일원에서 주민이 망연자실하게 군장병들의 잔불 정리를 지켜보고 있다.강릉=권태명기자

산불 순식간에 집으로 들이닥쳐

전 재산인 통장만 품에 안고 피난

25년간 공무원 명예퇴직 귀농인

두릅 농사 계획 10분만에 사라져

“전 재산이 든 통장 하나 들고 겨우 나왔습니다.”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주민 최종필(73)씨는 7일 오전 불에 타버린 집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재만 남은 집 앞을 계속 서성거렸다. 최씨는 “순식간에 집 안으로 연기가 들어오고 집에 불이 붙어 족보조차 들고 나오지 못했다”며 “갈아입을 옷 한 벌 없다. 전 재산이 담긴 통장 하나 품에 안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다행이다. 우리 집은 다 탔지만 옆집으로는 번지지 않았으니 천운”이라고 말했다.

오상현(57)씨는 이날 오전 잿더미로 변한 집을 확인한 후 그대로 주저앉았다.

화마가 집을 삼키던 긴박한 순간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를 미처 데리고 탈출하지 못한 것.

오씨는 25년간 공무원으로 지내다 명예퇴직을 한 후 지난 2월 관음리로 이사를 왔다.

평생 공무원 생활을 하느라 지친 몸을 회복하고 가족들과 두릅을 키우며 오순도순 살고자 했던 그의 노후 계획은 마을에 산불이 옮겨붙은 지 10분만에 잿더미가 됐다.

오씨는 “지금은 아무 대책이 없고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며 “불이 갑자기 번지는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 강릉의 한 맘카페에는 '관음리 화재로 집이 다 타버렸어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생후 24일 된 아들과 함께 있다가 불길이 번지면서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아들과 함께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 이에 맘 카페 회원들은 신생아 용품을 지원하는 등 이재민을 돕겠다며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있다.

최기영·임재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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