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더위 속에서 그림자만 팽창하는 밤이에요
쿠톰나 아코 쿠톰나 아코*
여동생 목소리가 이명 섞여 들려오면
끼니 대신 한국어 사전을
꼭꼭 씹어먹어요
이곳은 대륙성 기후
달아나는 입 속 발음들을 붙잡으려
나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다녀요
반대는 반대 열대는 왜 열때인 걸까요
연습장 칸칸마다 로복강이 부풀어 올라요
정신 빠진 검둥이 새끼, 일 똑바로 못해?
한국 와서 처음 배운 말이
나의 지독한 곱슬머리처럼 언제나 구불거려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더 쓴 것이
이 땅 위에서의 룰이기에
견딜 수 있는 만큼만 견디기로 약속해요
민도로섬에 두고 온 얼굴들 떠오르고
나의 지문은 희미해져요
잠들기 전 기도문을 주문처럼 읊조리는 건
더운 나라에서 첫째로 태어난 나의 습성
구식 선풍기 모터 돌아가는 소리에
흩어지는 문장들 나는, 너는
나는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어가요 *
틈새 하나가 있다면 마음 편히 들어가고 싶은 밤이에요.
*쿠톰나 아코 : '배고파요'라는 뜻의 필리핀 말.
*밴드 쏜애플(THORNAPPLE)의 1집 앨범 타이틀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인용